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기사 번역] 세아상역의 중남미국가에서의 인권침해

 세아상역(주)는 재계 273위, 의류/섬유업체로서는 10위권 내에 드는 중견 기업입니다. 또한 한국의 최대 OEM 의류 수출업체이기도 합니다. 세아상역(주)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중앙아메리카의 니카라과, 과테말라, 아이티에 의류 OEM 공장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아상역(주)가 운영하는 중미 공장들에서 그동안 노동조합 탄압, 노동조합원들에 대한 폭행, 협박 등의 인권침해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니카라과의 한 공장에서는 노동조합원들이 평화적 집회를 진행하는 중 사측의 지시를 받은 구사대 노동자들에 의하여 폭행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희망법이 참여하고 있는 ‘해외기업감시 네트워크’에서는 이러한 행위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고 세아상역(주) 본사 앞에서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세아상역(주)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고, 희망법은 앞으로 한국기업의 해외 인권 침해, 특히 의류 OEM산업내에서의 인권침해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려고 합니다. 

아래의 기사는 세아상역(주)이 운영하는 중미 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인권침해사례를 언급하는 뉴욕타임즈 기사입니다. 공신력있는 언론에서 발행한 중미 공장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기사라는 점에서 과테말라, 니카라과 뿐만 아니라 아이티에서의 활동 배경까지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기사는 국제민주연대에서 번역했습니다. 국제민주연대의 홈페이지에서도 이 기사의 번역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 원문 보기

기사 번역문 보기

지진피해가 없었던 곳에 아이티 지진 재건작업이?

아이티에 들어서는 공장들: 아이티 지진 재건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진 피해지역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건설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아이티의 보존노력이 위험에 처했다. DEBORAH SONTAG씀 2012년 7월 5일 발행

아이티의 대지진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던 날, 아이티 정부는 산업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아이티 북동쪽 지역인 카라콜(Caracol)의 비옥한 땅에서 살고 있던 366명의 농부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궁핍 속에 허덕이는 공장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농부들은 정부가 왜 그 비옥한 농토를 위에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땅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기 때문에, 농부들은 지진에 의한 피난민 생활을 견뎌가며 아무런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다.

늙은 농부인 장 루이스 세인트 토마스는 “우리는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정부가 우리의 입을 막기 위해서 보상금을 주었기 때문이죠.” 라고 진술하였다.

한편, 아직도 길 여기저기에 돌무더기들이 쌓여있는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렝스(Port-au-Princ)에서는 카라콜 산업단지 건립 기념식이 열렸다. 그 기념식에서 미국의 전 대통령이자 아이티재건위원회의 공동 의장인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카라콜 산업단지가 아이티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리라고 말하며 주요 입주사인 세아상역-미국의 월마트(Walmart)나 갭(Gap) 등 주요 소매상들에게 물건을 납품하는 한국의 의류기업-과의 협조를 부탁하였다.

세아상역은 6년 동안 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클린턴은 이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국무장관이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 (Hillary Rodham Clinton)은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며 세아상역을 전폭 지지했고 , 그 결과 세아상역은 세금과 관세 면제, 저임금 노동자, 작업장, 발전소, 새 항구와 한국인들을 위한 맞춤 주거단지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대지진이 발생한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티에서는 39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 집을 되찾지 못한 채 텐트에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재건설을 명목으로 내세우는 프로젝트가 지진의 영향도 받지 않은 땅에 산업단지를 짓는 것이며, 사실 이것은 아이티 주민보다는 외국 기업에게 더 큰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

지진 후 2억 2천 4백만 달러의 보조금이 아이티로 흘러 들어갔지만, 엄밀히 말해서 카라콜 산업 단지건설은 아이티 재건설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대외원조가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최빈국의 경우 경제적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 무너진 것들을 다시 짓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한다. 홍보자료에서, 카라콜 산업단지는 아이티가 “노동과 환경기준의 손상 없이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카라콜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을 검토해보면 개발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나 환경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산업단지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해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아상역은 과테말라에서 노동조합과의 분쟁 중에 공장을 철수 시키겠다고 협박했고 결국은 작년 공장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티 정부, 미국의 국무부와 미주개발 은행을 포함 하는 개발자들은 세아상역을 선택했다.

아이티 프로젝트를 위한 거래가 성사되기 전에,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에서는 미국정부와 국제기구에 세아상역 선택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였다. 그들은 과테말라에서 미국 소매업에 납품하는 생산 공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는 오매로 푸엔테스씨의 말을 인용해 세아상역의 폭력과 협박을 동반한 지독한 노동조합 탄압을 고발했다.

하지만 미국 관계자들은 이미 세아상역이 해외에서 운영 중인 20여개의 공장 중의 하나에서 발생한 규정준수 문제가 세아상역 전반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였다.

게다가, 입지장소를 정할 때, 개발자들은 카라콜 만의 생태계의 취약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1,100마일에 이르는 해안의 일부인 카라콜 만은 맹그로브(열대 및 아열대 해안에서 자라는 식물)와 산호초의 집단 서식지로, 대지진 발생 전 아이티에서 최초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아이티의 오듀본소사이어티(Audubon Society, 미국에 본부가 있는 국제 환경단체)의 대표인 Arnaud Dupuy는 “나는 이 지역을 선택한 것은 미친 짓이다.” 라고 언급하였다.

미국의 재무부 또한 이 지역에 산업단지를 건설하는 것에 대하여 고심하였다. 환경 영향 평가가 제때에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은행 이사회에서 미국을 대표 하는 재무부는 산업단지 건설에 5천 5백만 달러를 승인하는데 이례적으로 기권을 했던 것이다.

또한 국무부가 오염되지 않은 카라콜만에 화력 발전소, 주거 밀집단지 그리고 항구를 짓기로 계획했다는 것은 재건설 기금이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재건설”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곳에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의 국제 개발 책임자 Cathy Feingold는 “미국 국무부가 아이티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 어떤 일이든 우선 하고 보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해나간다면 아이티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산업단지의 아이티 홍보담당자들은 완벽한 것을 추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아이티에 만연한 많은 문제들 때문에, 어떤 프로젝트이건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걸음 물러서 팔짱만 낀 채, 이상적인 상황을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라고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Lionel Delatour는 되물었다.

산업단지를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카라콜의 제조업 허브는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따라서 아이티의 균형발전을 촉진 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미주개발은행의 아이티부서 매니저인 José Agustín Aguerre씨는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그 프로젝트는 하루빨리 실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름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만약 이 프로젝트를 일반적인 절차를 밟아 계획하고, 자금지원을 받고, 의사결정을 한다면 적어도 10년 후에나 산업단지를 완공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산업단지 건설은, 지진 전에 구상되기 시작했기는 했지만, 지진이 발생하고 나서야 긴급하게 추진되기 시작했다. 카라콜은 재건의 아이콘으로 부각되었지만 정작 필요한 피난처 건설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카라콜의 시장인 Landry Colas는 산업단지의 위치선정 과정에서 배제되었고, 뒤늦게 이 결정을 듣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위치를 선정할 수 있었다면 카라콜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미 주민들이 생계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산업적 ‘선구자들’

카라콜 산업단지 부지는 거의 일 제곱마일(78만평)에 이르는 넓은 땅으로, Hole of the North 강이 가로지르고 있다. 플랜테이션을 위해 오래전에 잘려진 큰 나무들과 작년에 닦여진 작은 농장들 때문에, 단지부지는 자갈투성이의 달 표면처럼 보인다. 땅의 둘레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고, 울타리 문 밖의 교회에는 “세아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쳐져 있다.

올해 여름, 산업단지 안에 있던 트레일러에서 세아상역의 경영진들은 태극기와 아이티 국기 아래 앉아 거대한 산업단지 건설지역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아상역은 공장을 위한 냉각 시스템을 건설하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이티 정부는 정말 우리가 저임금 작업장을 만들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세아상역의 고위 고문인 Lon Garwood가 농담조로 말했다.

사기업인 세아상역은 아시아와 중미에서 의류를 생산하며, 작년에 11억 달러를 수출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세아상역의 경영진들은 아이티에 투자함으로써 자신들을 “개척자”로 간주한다. “불안정한 정치상황 때문에 투자는 위험한 도박이었다”고 Garwood은 말했다. “우리가 이러한 위험을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 우리소유의 발전소를 세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 우리가 우리의 자금으로 땅을 사고 공장을 짓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카라콜에서 세아상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냐고 묻자, Garwood는 가족과 함께 온 한국 매니저들을 위한 거주지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출입 제한 주택지를 원한다. 하지만 여기는 그러한 주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세아상역의 아이티 자회사 대표인 Daniel Cho는 말했다.

이번 해에 한국에서 아이티로 온 Cho 대표는 카라콜 지역은 마치 백지 같아서, 세아상역이 이곳에 무언가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티 사람들에게 슬레이트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이 땅은 소작농으로 전락과 회복이 반복되었던 농부들의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농부들에 대한 보상 계획에 언급되어 있다.

“아이티: 역사의 여진들 (Haiti: The Aftershocks of History).”의 저자 Laurent Dubois는 미국의 관계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카라콜 지역은 외국인들의 착취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20세기 초 미국의 점령기 동안, 미국 해군들이 이곳에서 수감된 반역자들을 가혹하게 다루기로 악명 높았던 범죄자 수용소인 Chabert Post을 운영했다.

1986년 독재자 Jean-Claude Duvalier가 물러나자 거주민들은 사탕수수 농장으로 빼앗긴 땅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땅을 수 백 개의 작은 농장으로 나누어 가졌고,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임대료를 지불하거나 불법 점거하였다.

카라콜의 카톨릭 신부는 이 지역의 역사는 “주민들 모두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Joseph Francis Du Village 신부는 “새로 지어질 산업단지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티의 노동자들은 과거의 역사가 재현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이티 국민에게 불멸의 영웅으로 인식되는 반역자 리더인 Charlemagne Péralte는 카라콜 땅의 묘비도 없는 땅에 묻혔다.

지진이 자극한 금융지원

2009년 허리케인으로 인한 재앙이후, 유엔은 클린턴을 아이티에 파견하였고, “더 나은 곳으로의 재건”이라는 계획목표를 수립하였다.

클린턴이 특별 파견자로 지목되었을 때, 그는 그의 아내와 함께한 여행에서 생긴 아이티에 대한 애정과 함께 대통령임기 동안 무역정책으로 아이티의 농산물 산업을 흔들어 놓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그 해 가을, 클린턴 재단과 미주개발은행은 Port-au-Prince에 이례적으로 큰 무역 컨퍼런스를 개최하여 잠재적인 투자자들을 유인하였다. 새로운 산업단지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가 활발히 논의되었지만, 투자자금을 어디서 충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그 후 지진이 발생했고, 개발은행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 산업단지 계획은 큰 문제를 안게 되었다.” 고 개발은행의 Aguerre가 말했다.

개발은행은 아이티에 10년 동안 추가 원조자금으로 20억 달러를 약속하였다. 미국의회는 채무구제, 의료원조와 식량과 정의 프로그램에 더하여, 재건 프로그램을 위한 1.14억 달러 지출을 승인하였다.

대략 4억 천이백만 달러가 재건비용으로 책정되었는데, 그 중 4/1 이상이 카라콜에 주어졌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곳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지진 이후로 아이티의 전 지역이 재건되고 있습니다.” 아이티 고위 공무원인 Michaël de Landsheer이 말했다.

국무장관 클린턴의 참모총장이자 고문관인 Cheryl D. Mills은 “이제까지 재앙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우리는 물질적인 인프라들의 재건뿐만 아니라 반드시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위하여 투자해야 한다.” 고 말했다.

하지만, 돌무더기 제거와 땅을 확보하는 일이 어렵고, 제도적 문제까지 얽혀 있기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 정부 책임성 평가 보고서에서는, 4억 1천 2백만 달러가 책정된 후 16개월 동안 오직 1퍼센트도 안 되는 자금만이 쓰였다고 밝혔다.

그 보고서는 직원채용 문제를 지적하였다. 지진 이후 17개중 10개의 국제개발단체들이 아이티를 떠났는데, 이들은 그 자리를 매 꾸어 줄 대체인력들을 채용하는데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초기부터 산업단지 건설은 실용적 이유보다 보다는 외교적 이유로 추진되었다. 무역이 원조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보충해 줄 수 있다는 게 아이디어였다.

수출 지대는 아이티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이티의 비즈니스 리더들은 Duvalier 지역에서 의류 산업이 붐을 이루었을 때를 회상한다. 당시 미주 정부 리포트는 아이티가 “카리비안의 타이완”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Port-au-Prince 지역을 기초로 세워진 당시의 공장들은 수만의 구직자들을 끌어들이면서 Cité Soleil라는 반구의 최대 슬럼가를 형성시키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공장들은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어 내거나 전국적인 빈곤을 줄여 주지 못했다고 아이티의 캐나다 전문가인 Yasmine Shamsie은 말한다.

Dubois교수는 산업단지의 아이디어를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역사적으로 고찰한 바로는, 아이티는 플랜테이션 시스템을 전복시킨 노예였던 사람들에 의해서 설립 되었으나 사람들은 계속 플랜테이션과 유사한 방식의 산업을 세우려 노력했다. 외국의 투자가 나라를 현대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카라콜 산업단지와 유사한 종류의 프로젝트들이 계속 있어왔다. 하지만, 아이티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다.” 라고 교수는 말한다.

카라콜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협업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마킬라도라로 알려진 의류산업단지를 넘어서 산업을 다양화하기 위해서 아시아를 기점으로 하는 가구 회사와 아이티의 페인트 회사와 계속 협상하고 있다.

“ 의류산업전용지대를 만드는 것은 모두를 위한 일이다. 사실 아이티 같은 나라는 마킬라도라 같이 빠른 시간 내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저임금 산업이며,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걸 인정한다. 아마 내일이면 회사들은 더 좋은 지역에 입주하기 위해 아이티를 떠날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들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개발은행 매니저인 Mr. Aguerre는 말했다.

2010년 봄에 클린턴 전 대통령과, 국무장관 클린턴의 참모장이 의류산업을 지지했다. 아이티에서 생산된 의류들이 미국시장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에서 가결하였던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한국을 공식 방문 했을 때, 세아상역의 경영진들은 서울의 미국대사관으로 호출되었다. 세아상역의 회장인 김웅기씨는 1991년 이래로 아이티를 공장부지로 고려하고 있었고, Mills는 세아상역이 그들의 진출여부에 대해 더욱더 깊게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진출계획은 점점 희미해 졌다. 세아상역은 실행가능성 연구 보고서의 결과는 절망적 이었던 것이다. Garwood씨는 “보고서의 결과는 ‘David Letterman의 아이티에 진출을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 이유’ 라는 제목을 달아야 할 정도였다.”

Garwood가 말하기를, 가장 큰 장애물은 8월에 3.75달러에서 5달러로 오르기로 계획되어 있는 아이티의 의류 노동자들 최저임금이 계속 상승할지 여부였다.

Garwood가 말하기를, 가장 큰 장애물은 8월에 3.75달러에서 5달러로 오르기로 계획되어 있는 아이티의 의류 노동자들 최저임금이 계속 상승할지 여부였다.

지난 여름, Liz Claiborne주식회사의 한국 에이전트였던 Garwood씨는 Liz Claiborne의 전 최고경영자이자, 국무장관 클린턴의 친구인 Paul Charron부터 연락을 받았다. Charron은 Garwood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아상역이 아이티에 입주를 망설이게 하는 장애요인들을 모두 적어 주세요. 워싱턴 디씨의 고위 공직자들은 정말 세아상역이 공장을 세울 수 있기를 바라거든요.”

그들은 한국의 의류회사인 Hansoll과의 협상이 결렬될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세아상역에 거는 기대가 컸다.

세아상역의 경영자들은 즉시 장애요인들을 담은 문서를 보냈고, 늦은 여름, 국무장관 클린턴과 다른 국제 고위공직자들을 만나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워싱턴 디씨로 날아갔다.

“문서들을 검토할 때, 그들은 계속 ‘우리는 이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라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장을 세울 경우 3000에서 4000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어떻게 하면 그 숫자를 늘릴 수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나는 우리가 기계구입을 위한 대출을 할 수 있다면 그 숫자를 배가 되게 할 수 있다고 했고, 그들은 ‘그럼 한 10,000명 정도가 되는 것이냐?’ 라고 되물었습니다. 우리는 땅 매입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고, 공장뼈대를 세울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그 숫자를 배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20,000개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결과나 나온 것입니다.” 라고 Garwood씨는 말했다.

결국, 아이티 정부가 땅을 제공하고, 개발은행이 공장뼈대를 설립을 위한 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미국 정부가 발전소, 주거지, 그리고 항구설립을 위한 1억 2천 4백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세아상역은 7천 8백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대출 신청에서, 초기 투자금액 중 3천 9백 3십만 달러는 장치설비 및 운영 비용으로 산정했고, 고장이 날 경우 염색기와 편물기를 고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것과 학교를 지어줄 것을 약속했다.

2010년 10월, 클린턴 국무장관은 김웅기씨를 비롯한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양해각서에 서명하기 위해 뉴욕에 갔다. 전 아이티 수상이자, 전 미국대통령 클린턴과 복구 미션의 공동 의장인 Jean-Max Bellerive 은 이 날을 ‘아이티에게 아주 중요한 날’ 이라고 명명했다.

노동관행에 대한 경고

양해각서 서명식 후, 노동조합들은 세아상역을 선택한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문서를 통해서 그러한 우려들을 보고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미국 관계자들과는 다르게 세아상역을 평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 의류 무역 대표부의 섬유담당 보좌관인 Gail W. Strickler는 세아상역을 “모범적인 기업시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동자 권리 컨소시엄의 사무국장인 Scott Nova은 “더러운 산업에서 여타의 기업보다 더 무자비하다는 걸 보여주는 기록을 가진 큰 회사”라고 불렀다.

2010년 12월,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는 산업단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세아상역이 과테말라에서 저지른 노동법과 형법 위반을 요약해 보냈다. 5장에 달하는 이 메모에서 세아상역은 뇌물, 협박, 그리고 노동조합형성을 막거나 해체시키기 위한 강제적 구속으로 고발되었다. 게다가 한 현지노동조합은 과테말라 당국이 방관한 노동조합 리더의 강간 사건에 세아상역 관리자가 연루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Garwood는 세아상역이 직접 폭력이나 협박을 저질렀다는 근거는 없다고 진술했다. 그는 “나쁜” 몇몇 회사 임원들이 2005년 과테말라 공장에서 노조결성을 탄압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했다.

2005년에, 미국의 외교 채널은, 경찰의 도움을 받은 세아상역의 매니저들이 16명의 노동조합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들을 구금하고, 그들이 서명하지 않는다면 구금시킬 거라며 협박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명했고, 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구금되었다.

세아상역의 고객인 갭(Gap)이 개입하였다. 이 외교 채널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고, 미국 대사관은 이 문제가 잘 해결되어 기쁜 심정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테말라의 노동조합 리더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적개심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노동조건 또한 여전히 열악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26세의 노동조합 리더인 Delfina Vincente Yac씨는 감독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쉴 틈조차 주지 않았으며, 인센티브를 주겠다며 성관계를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세아상역에서 일하다가 노동조합을 위해 일하게 된 변호사 Alejandro Argueta는 회사는 법적인 요건을 거의 충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9년, 정부의 판결에 힘을 얻은 노동조합이 지급되지 않은 임금, 보너스, 그리고 복지후생을 위해 세아상역에 압력을 가하자 상황은 악화되었다.

노무관리 회의에 따르면, 세아상역의 경영진은 회사의 문을 닫게 할만큼의 비용을 요구하였다며 노동조합의 리더를 고발했다. 경영진은 “이사회의 임원진들은 그저 다른 나라로 옮겨 일을 하면 되지만, 실제 피해를 받는 사람은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Argueta는 세아상역이 저지른 노동조합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 차별에 대한 형사 소송을 제기 했다. 또한 Gap에게 “Gap의 의류는 고함과 협박과 심지어 노동자들의 폭행을 통해 만들어 진다.”라며 호소했다.

2010년 초, 며칠간 계속된 시위는, 폭력적인 경찰대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 사건 이후, Argueta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강압적인 괴롭힘과 학대가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2009년 말, Gap은 과테말라에서 생산을 중단했다.

Argueta는 오래지 않아, 대부분의 노동조합 리더들은 그만두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다고 했다. 임신한 Vincente Yac는 회사의 매니저가 그녀에게 2천 5백 달러를 주며 그녀 자신과 아기를 위해서 그만두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갈기갈기 잘려버릴”지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Argueta가 말하기를, Vincente Yac는 확성기를 통해서 회사의 임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 결과 사무실이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Garwood은 노동조합의 리더들이 제기한 혐의를 부인하며, 회사는 협박을 하거나 폭력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Gap은 더 이상 과테말라에서 생산하지 않지만, 관리인들에게 언어적, 성적, 그리고 정신적 모욕과 단체 결사의 자유 그리고 해고정책에 대한 교육을 제안한 모니터링단을 보냈다.

아이티 프로젝트가 서명된 며칠 후 세아상역이 미국 관리자에게 보낸 이메일에 따르면, 2010년 12월의 GAP의 모너터링단 방문 이후에 교육이 실행되어 상황이 나아졌지만, 노동조합 일원인 노동자는 오직 7명만 남아 있었고 한다.

미국 국무부 임원들은 그들이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 리포트가 준비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과테말라의 대사관 임원들과 무역 관계자들 그리고 의류산업 리더들에게 세아상역에 대해서 물어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아상역과 관련하여서는 오직 몇몇의 “준법문제”만을 -그것도 이미 해결된- 찾아낼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의 Feingold이 말한 것처럼 조사를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2011년 가을, 세아상역은 과테말라 공장문을 닫았다. 한 지역 신문은 “한 의류회사가 문을 닫고 아이티로 옮겼다.”라고 보도했다.

Garwood는 “우리는 미국 소매상들로부터 낮은 가격을 유지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라고 말하며 과테말라를 떠난 이유는 비용 상승이라고 말했다.

세아상역은 이미 더 낮은 가격으로 생산이 가능한 니카라과로 생산공장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한 노동조합들이 여러 가지 탄압으로 고통 받고 있음을 토로했다. Garwood에 따르면, 2014년 니카라과의 무역특혜가 끝나게 되면, 세아상역은 니카라과 대신 아이티에서 생산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미국 공무원들은, 미국 자금의 조사 프로그램에 의한 철저한 검사를 요하는 무역 법률 때문에, 세아상역이 아이티에서 철저하게 모니터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티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Yannick Etienne는 그 조사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규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를 포함한 노동자 지지자들은 카라콜이, 아이티에서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의류산업단지인 Codevi에 악영향을 줄까봐 걱정하고 있다.

Codevi의 소유자인 Fernando Capellán은 “그들은 카라콜에 저임금 노동을 유치하기 위해 우리 산업단지의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환경문제에 관한 분쟁

더 나은 환경을 위한 재건이라는 것은 언제나 간과되어 왔던 아이티의 환경문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제 위기대처 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전직 부대표인 Mark L. Schneider는 “모든 재건 프로젝트는 그것이 환경 보호를 우선시하고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라고 미국 의회에서 증언 하였다.

따라서,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카라콜에 거대한 산업단지가 건설된다는 걸 알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카라콜 만은 맹그로브와 거초암초 뿐만 아니라, 대서양 장수거북이나 흑돗돔 같이 멸종위기 생물들의 서식지 이다. 이곳은 또한 활발하지만 위협받고 있는 어업지대이며, 산호초와 같은 자연적 요소와 콜롬버스가 산타마리아를 타고 탐사했던 지역이라는 역사적 요인 덕분에 관광산업이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오듀본소사이어티’의 Dupuy씨는 “카라콜은 생물다양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탄생지라는 점에서 중요한 곳이다.”라고 말했다.

Global Environmental Facility의 대표이자 환경 보호 프로젝트의 주요 기부자는 개발은행의 대표에게 지진이전에,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카라콜 만을 아이티의 최초 해양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산업단지는 이렇게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북쪽 지역의 지대 선정을 맡고 있던 미국 컨설팅 회사가 카라콜 지역을 가장 좋은 입지 지역중 하나라고 선정하고 나서, 개발은행은 카라콜을 지정한건 바로 아이티 정부라고 말했다.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카라콜 지역은 좋은 흙과 수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며, 그것은 카라콜이 좋은 농장을 가질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후에 컨설턴트들은 그들이 입지후보들을 추천하기 전에 어떤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2011년 1월에서야 컨설턴트들은 자금을 얻기 위해 좀 더 심층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이번에 그들은 구직자들의 유입과 카라콜 만의 취약성을 언급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높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하수처리가 잘 된다 하더라도 카라콜만이 위험에 처할 것이며, 생태계과 대수층에 줄 악영향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미국 자금으로 지어질 화력 발전소는 중유를 연소시킴으로써 추가적인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미국 관계자들은 그것이 많은 오염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아이티의 소비자들에게 적당한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무부의 환경 컨설턴트들은 그 발전소가 최대치로 가동이 된다면 대기에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아이티의 환경부장관인 Joseph Ronald Toussaint은 산업단지 계획에 실망하였지만,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환경보호론자들과 개발자들을 Port-au-Prince로 소집하여, 비영리 단체인 미국 건설기술자 협회가 주도하여 지역의 마스터 플랜을 수립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배수와 하수시설을 잘 갖추어야 한다고 요청하였다.

몇몇 국제 환경전문가들은 그 기술자들의 그룹은 이미 만들어진 계획을 수용하기 위한 계획을 만들도록 요청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술자 그룹의 관리 책임자인 Erica Gees는 “우리는 그곳이 적당한 장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라고 말했다. 주요 문제 중 하나는 인구의 증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이다. 어떻게 하여야 미국 자금제공의 주거 프로젝트가 잘 운영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카라콜 산업단지는 “통근거리 내의 주거지”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그 프로젝트가 노동자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미국 국무부는, 수혜자들은 지진에 의해 피해를 입고 북쪽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무부는 피난민들이 2년 반 후에 얼마나 카라콜에 남아있을지 알지도 못한다.

2010년 12월, 아이티 재건 미션에서 미국이 아이티에 총 4천 5백개의 집을 건설할 것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첫 계약은 올해 4월에야 체결되었다. 그것도 오직 906개의 주거 건설에 대한 것이었으며 대부분은 카라콜 지역에 지어질 것이다.

첫 계약까지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묻자, Mills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새로운 주민들을 위해 집을 짓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주거 계획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동의와 상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주민들의 요구로 인해, 새 집은 계획된 것보다 크게 지어질 것이다. 하지만 수정된 집은 5~6명을 한 세대로 했을 때 365 평방 피트로 여전히 비좁을 것이다. 반면에 Port-au-Prince의 미국 대사관은 근무자를 위하여 임원당 1,400에서 2,690 평방피트를 배당해 주었다.

카라콜 지역에 지어질 750개 콘크리트 집을 위해서는 대략 2천만 달러가 배정 되었지만, 86에서 100개의 연립주택과 후생시설이 갖추어진 대사관 복합단지를 위해서는 8천만에서 1억이 예산으로 측정되었다.

미국 관계자들은 공간의 비용효율성을 높였다고 말하지만, 동료 평가를 한 건설자 Greg Higgins는 “지나치게 밀집되어 있고 단조로우며”, “도시계획의 많은 원칙들을 위반한” 계획이라고 비판하였다.

돈에는 뿌리가 없다

모래투성이이며, 진행이 더딘 카라콜에는 아주 작은 두 개의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들의 이름은 토양이 척박한 지역적 경제 특징을 설명해주고 있다: 카라콜-피쉬와 카라콜-바나나. 그 곳과 도무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휘황찬란한 새 공업단지 광고판은 만 오천 명의 지역 주민들의 희망과 동시에 두려움을 품고 있는 변화를 떠벌리고 있다.

“제 꿈은,”, 콜라스 시장이 말했다. “우리가 살아왔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다른 도시, 미래의 도시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Cité Soleil, 즉 거대한 슬럼이 된다면 그것은 악몽이 되겠죠.”

여러 국가의 인사들과 수많은 조약 행사에 참여해온 콜라스 시장은 가끔씩 그들이 자신을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시청에 내려서는, 저에게 인사를 하죠, 하지만 어떤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이 곳에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여기 카라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저보다 더 잘 안다니까요.”

시청의 옆에, 쾌활함이 느껴지는, 미국 자본의 가판대는 “모든 정보가 무료”라는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판대의 두 명의 연락 담당자들은 올해 처음 사 개월 동안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찾아 해매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지도록 만들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구직 지원서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른다고 말하지요.” 지진으로 남편을 여읜 32세의 수잔네 피에르는 5월 중순이 돼서야 최종적으로 보수를 받았다.

아무도 지역 주민들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다고 느낀 29세의 침례교 목사 리빈크스 조셉은 최근 공업단지 입구 바깥에 있는 교회에서 한 모임을 열었다. 기대치를 낮추고자 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카라콜의 주민들이 2만 개의 일자리를 끈덕지게 기다려 왔으며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세아상역은 올해 오직 천오백 명 정도의 인원만 고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셉은 모임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가 충성심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세아상역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니카라과로 회사 견습 과정을 거치고 돌아온 20명의 아이티인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농장에서 “추방당한” 카라콜 주민이라고 했다.

“제 기억이 옳다면, 세아상역의 임원들은 정확히 제 아버지가 달콤한 카사바를 경작하시던 바로 그 곳에 정착했습니다.”

아이티 정부는 농민들에게 그들이 잃게 된 경작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고 다른 지역으로 대체 경작지를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인터뷰에 응했던 모든 농민들은 바보가 된 것 마냥 좌절했고 현금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돈에는 뿌리가 없다는 겁니다.”라고 연장자인 농민 세인트 토마스가 말했다. “바나나 나무요? 과실을 따도, 다시 자라잖아요. 돈은 한 번 써버리면 없어져버리지 않습니까.”

모임이 있은 뒤, 조셉은 니카라과에서의 경험이 환상을 깨게 했다고 고백했고 그는 곧 대체 일거리를 찾자마자 세아상역의 일자리를 그만둘 것이라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니카라과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끔찍합니다.” 조셉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니카라과 노동자들에게 사람대접을 안 합니다. 이런 식이죠: ‘일 해라. 당신이 안 할 거면 나는 다른 사람 불러다 쓸 거야.’”

그러나 그는 이러한 사실을 모임에서 밝히지는 않았다. 여자들은 부채질이나 하고 남자들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 가운에 조셉은 사람들에게 –비폭력적으로- 그들에게 오염과 자신들의 공동체에 외부인들을 불러올지도 모 공업단지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힘쓸 것을 촉구했다.

“가장 먼저 손실을 잃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가장 먼저 이득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원문제목: Earthquake Relief Where Haiti Wasn’t Broken

뉴스출처: http://www.nytimes.com/2012/07/06/world/americas/earthquake-relief-where-haiti-wasnt-broken.html?pagewanted=all&_r=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