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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실무수습 후기 ] 영화 ‘로렐’ 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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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중 보고싶었던 작품 중 하나였으나 기회를 놓치고 개봉소식을 기다려온 ‘로렐’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소수자인권위원회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에서 주관하는 단체관람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기에 다녀왔다. 사실은 전수안 전 대법관님이 관람을 하러 오신다기에 평소 대법원 판례를 통해서나 볼 수 있었던 분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소년같은 호기심에 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겠다. 처음엔 이렇게 가볍게 ‘영화를 보러 간다’ ‘전 대법관님을 보러간다’라는 마음으로 갔지만 내가 미래에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LGBT 인권에 관련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는 숙제를 안고 상영관을 나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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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각자의 세계에 사랑하는 것들을 잔뜩 가지고 있다.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정의를 가지고 있고 사랑의 대상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사람, 동물, 음식, 식물, 무생물 등,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하면 행복하다는 점은 같다. 모든 인간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므로 각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그 소중한 사랑의 대상들은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누구에게든 아주 갑작스러우며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 바로 연인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은 그래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 빠져버린 그 손쓸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는 더더욱 다른 사람의 잣대를 들이대어 재단하려고 드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랑과 그 사람에 대한 폭력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우리 모두는 각자 꿈을 가지고 있다.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꿈의 뜻풀이 중에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란 뜻이 있다. 확실히 내 생각에도 ‘꿈’이라는 단어는 ‘목표’라는 단어보다는 좀더 이상적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대체로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비현실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우주여행, 복권 당첨, 외계인과의 만남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이 꿈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들에게 ‘꿈’이란 현재 결핍되어 있으며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렐과 스테이시는 사랑에 빠진 평범한 커플이다. 그들의 꿈은 지극히 평범하다. 마당이 있는 집과 개 한 마리를 가지는 것. 로렐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한 것. 실제로 이 영화에서 로렐과 스테이시 커플이 마당이 있는 집과 개를 마련하는 장면은 영화의 초중반쯤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왜 이 평범한 커플의 꿈을 지키려는 노력이 다큐멘터리를 거쳐 영화로까지 나오게 된 것일까하는 점이다.

로렐과 스테이시에게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면 동성 커플이라는 점뿐인데도 이 평범한 커플의 평범한 꿈은 세상이 그들을 평범하지 않다고 규정함으로써 아주 어렵고 실현 불가능한 꿈이 된다. 이성 커플의 한쪽이 사망하고 다른 사람이 생명보험금이나 유족연금을 받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성 커플인 로렐과 스테이시에게는 그 당연한 것이 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반으로 나누자면 로렐이 암에 걸리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로렐과 스테이시의 평범하고 행복한 커플의 일상은 별다른 장치 없이 스크린에 투영된다. 너무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들. 후반부의 로렐의 암 투병과 유족연금을 둘러싼 평등의 외침은 그러한 일상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들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대체 왜 동성간의 사랑이 별난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인데. 대체 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꿈’이라고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왜 연인 관계에 있어서만은 이성간의 사랑만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어째서 동성간의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과는 달리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가. 어째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려고 드는 것일까.

똑같은 사람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평등권의 위배가 아니면 무엇일까.

‘로렐’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 영화를 투쟁의 일지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이 영화를 신파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꿈을 꾸는 사람들의 평범한 로맨스라고 소개하고 싶다. 이 평범한 로맨스를 왜 별종으로 취급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게끔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로렐과 스테이시를 이성 커플로 바꿔도 전개상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영화는 극적인 반전도 없고 뛰어난 미쟝센도 없으며 소름끼치는 CG도 없다. 하지만 평소에 LGBT 인권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나 동성간 연애나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던 사람들이야말로 꼭 한 번 관람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평범한 전개에 정직한 영상이 오히려 그 분들에게 울림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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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안 전 대법관님이 GV 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봐야만 어떤 정책적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셨는데 나는 그 권력이 반드시 입법자나 행정부 고위관료들에게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편견을 가지고 차별을 행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동성 커플에게는 직접적 가해자일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부터 바꿔나가야 정책적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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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모아라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