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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터괴롭힘 판례 연재] 2편, 제 발로 나갈 때까지 괴롭히기

망신을 주기 위한 인사, “제 발로 나갈 때까지 괴롭힌다!”

 

 

당신은 오늘부터 과장이 아니라 평사원이예요!

 

Y가 도쿄의 한 은행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1952년이었습니다. 일본경제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던 50~60년대를 은행원으로서 성실하게 살아온 Y였습니다. 그러던 중 1964년 Y가 다니던 은행이 미국에 본사를 둔 뱅크오브아메리카일리노이에 매각되면서, Y 역시 새로운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새 직장에서도 Y의 생활은 순조로웠습니다. 1972년에는 총무과 과장으로 승진했고, 1978년에는 커미셜2 과장으로 보직을 옮겼습니다.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아왔고, 인사 고과도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그런 Y에게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봄이었습니다. Y는 어느날 인사개편 통보를 받았습니다. 과장 직위로부터 강등하며, 지금까지 동료로 지내던 과장의 밑에서 지휘감독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Y가 부여받은 업무 역시 지금까지 쌓아 온 경력이나 지식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Y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직급이 내려가고 급여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2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경영합리화, 구조조정그리고 나이든 직원 쫓아내기!

 

뱅크오브아메리카일리노이는 전략적으로 진출한 일본시장에서 고전했고, 급기야 1978년부터는 적자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에 회사의 경영을 합리화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기로 하고, 직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강점으로 평가되는 대부업무와 외국환 분야를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구조개편이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회사의 방침은 직원들의 반발을 낳았고, 특히 Y를 포함한 다수의 관리직 직원들은 저항감이 심했습니다. 비교적 오래 회사를 다닌 이들은 이 구조조정에 불만이 있었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 온 업무를 고수하고자 하는 성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었습니다. 급기야 1982년에는 회사의 방침에 잘 따르는 직원들은 승진을 시켜주는 등 혜택을 주고, 반대로 말을 잘 듣지 않는 다수의 관리직 직원들은 강등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Y 역시 이런 조치에 따라 1982년에 1차로 강등되었고, 다시 1986년에는 총무과 접수처로 배치전환되어 비품관리, 방문객 안내, 단순경리업무 등을 맡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990년에 해고되었습니다.

 

해고되기 전 Y는 꾸준히 과장으로 복귀를 주장했고, 다년간 근무경험이 있는 총무과로 재배치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끝내 그를 과장으로 승진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구를 들어주는 척 총무과로 보내면서 접수처에 배치해 은행 내외부의 사람들에게 창피함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휴식시간에도 일을 시켰고, 심지어 다른 직원들로 하여금 모욕감을 받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인사권한은 사용자의 고유권한인가? 자발적인 퇴직을 목적으로 하는 배치전환은 정당한 인사권한인가?

 

 

(1) 회사가 Y를 과장에서 평사원(영업전문가)로 강등한 처분

(2) 회사가 Y를 총무과 접수처로 배치해 단순 업무를 맡긴 처분

 

일본 법원은 위의 두 가지 인사처분이 정당한지가 이 사건(이른바 뱅크오브아메리카일리노이 사건, 東京地判平7․12․4)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일본 법원은, 먼저 Y에 대한 두 가지 처분이 징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사권 행사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사고과, 이동, 승진, 강등, 해고 등 모든 인사권 행사는 취업 계약에 근거하는 것이며, 여기서 노동자를 어떻게 배치해서 활용하거나 통제할 것인가는 경영상의 재량 판단에 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사권의 행사는 현저하게 타당성이 없거나 권리를 남용한 것이 아니라면 위법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사권이라고 해도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위법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노동자의 능력, 적성, 노동자가 받을 불이익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일본법원은 이러한 일반론에 근거하여 Y에 대한 두 처분이 정당한지 여부를 판단하였는데, 먼저 (1)의 경우에는 회사의 인사권이 남용되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경영상 긴박한 상황에서 새로운 경영 방침을 세웠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는 직원을 강등한 것에는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Y만 강등한 것이 아니고, 다른 강등된 직원들이 대부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Y가 수령하는 임금이 결과적으로 감소하게 되었지만 이는 인사관리업무를 담당하지 않게 됨으로 인한 직무수당의 감소이기 때문에 위법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2) 의 경우에 일본 법원은 인사 처분이 위법하다고 보았습니다.

접수처는 보통 20대 초반 계약직 여사원들이 해오던 업무로서 문서수발이나 서류배송, 방문객 접수 등의 단순 업무인데, 이 일을 근속 33년이 된 과장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업무 특성상 Y와 구면인 외부 방문객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Y가 자존심과 명예에 상처를 입은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쉬는 시간에도 일을 시키거나, 다른 직원들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퍼레이션 매니저인 한 사람은 접수 업무를 하고 있는 Y에게 “즐기고 있어?”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일본 법원은 (2)의 처분이 고의로 경험과 지식에 걸맞지 않는 직무에 배치해 일의 보람을 상실시키고, 창피와 위화감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보았습니다. 직장에서 더는 견디지 못하도록 해 스스로 그만두게 하려는 의도라는 판단입니다. 이러한 처분이 실력주의를 중하게 여기는 외국계 기업에서, 급박한 경영환경 때문에 이루어진 처분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일본 법원은, Y에 대한 총무과 접수처 배치는 Y의 인격권을 침해했고, 회사가 의도적으로 Y를 고립시켜 노동 의욕을 잃게 해 퇴직으로 내몬 일터괴롭힘이라고 보고, 회사에 부여된 재량권을 넘어선 위법한 것으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Y가 받은 굴욕감과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위자료 100만엔에 상당한다고 인정했습니다.

 

글_김동현, 김광민

(이 글은 공익재단법인 21세기 직업재단,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일본 판례 모음』에 수록된 판례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