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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 공개좌담회 속기록

지난 7월 1일, <제7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에서는 “국제 인권 메커니즘의 활용과 인권운동”이라는 주제의 공개좌담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올해 공개좌담회는 토론자로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활동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ADI 이동화 활동가가 참석해 국제 인권 현장애서 쌓아 온 다양한 경험담과 국제 인권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본 자료는 규범과 실무 자체에 대한 소개를 넘어 국제 인권 메커니즘과 인권옹호(advocacy)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이 분야에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세한 안내가 될 것입니다.

 

 

<속기록> 7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

 

사회: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패널: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이동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ADI 활동가)

 

류민희: 공익인권법실무학교 공개좌담회는 전체 공익인권법실무학교를 닫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해왔습니다. 그동안의 공개좌담회 주제를 소개하면, 1회는 ‘새내기 변호사, 공익의 길을 모색하다’, 제2회는 ‘이기는 것’과 ‘바꾸는 것’-사회변화전략으로서의 소송, 그 가능성과 한계, 3회는 법질서시대의 악법과 불법 – 이 시대의 ‘법과 원칙’에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4회는 활동가와 변호사가 만났을 때 – 활동가가 말하는 ‘변호사와 일하기’, 5회는 공익인권법 운동과 국회의 활용, 작년 6회는 새 정부 시기, 역사에 비추어 본 인권운동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공개 좌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세계 인권선언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번 공익인권법실무학교 이틀 동안 국제인권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는데요. 인권이 각 국가에게만 전적으로 맡겨지는 국내적 문제를 넘어서 국제적 문제가 된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이때부터 국제 체제의 지역 인권 메커니즘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한국이 가입한 7개의 인권 협약은 헌법 제6조 1항에 의해서 국내적 효력이 있습니다. 설사 이 조항이 없다고 하더라도 헌법의 기본권과 국제 인권법의 권리 조항들이 서로 연원이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헌법 기본권 해석의 지침이 되는 규범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가 국제인권법 메커니즘, 국제인권법이라고 하면서 국내법과 따로 분리되어서 특별한 규범인 것처럼 소개를 하는 것이 오히려 비생산적이고 때로는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고유한 실무의 문제들이 있고 활용의 역사들이 있기 때문에 따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올해는 국제인권 현장을 오래 지키셨던 활동가 여러분의 경험담과 관점을 공유하는 자리를 기획했습니다. 오신 분들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활동가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님, 마지막으로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ADI 이동화 활동가님 모셨습니다. 주최 측으로서는 이 세 분을 성공적으로 섭외를 마치고 나서 할일은 다 끝났다, 세 분이 말씀을 하시도록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래도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드리기 위해 질문을 준비를 했습니다. 저의 질문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플로어에서도 질문을 준비하셨다가 이따 질문 시간에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사람으로부터 출발을 하는데요. 앞에 계신 분들을 보면 왜 저 분이 저 일을 하고 계실까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오늘 주요한 주제가 협의의 국제 인권 메커니즘 하지만 세 분의 활동 경력에서 광의의 국제연대 활동도 많이 포함이 되기 때문에 범위에는 구애 받지 마시고 오늘 이야기보따리 풀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류민희: 첫 번째로 패널 모두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크게 말해서 ‘국제인권과 나’ 같은 질문인데요. 혹시 인권운동에 입문하시고 나서 국제인권규범을 발견하시게 되셨는지, 아니면 문헌을 통해 접하고 있다가 ‘인권운동을 활용을 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일종의 입문담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류은숙: 저는 인권 운동하는 류은숙이고요. 이곳에서 제일 올드한 이야기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웃음). 최근에는 사실 국제인권연대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제가 주로 하는 일이 아니고요. 저는 90년대 초창기의 경험을 오늘 주로 말씀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92년 8월 정도부터 인권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인권운동에 입문했을 때는 인권이라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입문해서 처음으로 인권 공부를 할 때, 동료들과 법무부 번역본으로 세계인권선언 한 조항 한 조항 조항을 읽는 공부를 했어요. 그것이 제가 제일 처음 접한 국제인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세계인권선언이 올해 70주년을 맞는 것이죠. 그 다음 제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제일 처음으로 맡게 된 임무가 유엔 사회권규약에 대한 민간보고서 작성입니다. 저 혼자 담당한 것은 아니고 다른 단체 활동가들하고 공동으로 했는데, 그래서 사회권 규약을 통해 한국의 척박했던 상황, 그러니까 자유권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왔지만,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인권 문제가 인권으로 여겨져 오지 않았던 것을 ‘사회권’이라는 이름으로 제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요. 곧 이어서 94년도에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정부 최초 보고서에 대한 NGO보고서를 제가 담당해서 2년 여 동안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관한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제가 어떤 식으로 알게 되었냐면, 어느 날 외국에서 두꺼운 소포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여니까 영어로 되어 있었고 선배들이 젊은 네가 읽어 봐라 하고 저한테 줬어요. 보니까 한국 정부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낸 최초의 정부 보고서의 영문본이었어요. 발신인은 NGO Group for Child Rights 이런 곳이고. 어떻게 우리를 알아서 보내주었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그때는 인터넷이 아니라 PC 통신 시대여서 많은 인권단체들이 홈페이지라는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유일하다시피 PC 통신 시대에 영어로 된 홈페이지 대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안에 내용은 없지만 우리는 누구이고, 주소는 어디이고, 무슨 일을 한다는. 그러니까 외국 단체에서 이 보고서를 한국의 인권단체에 알리고 싶은데 찾아보니 주소가 뜨는 곳이 그곳이니까 저희에게 보내준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보고 저희가 유엔 아동권리협약 민간 보고서를 준비하게 되었고요. 그것을 하는 과정에서 아동 단계에서부터 권리인식 교육이 중요하다.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인권 교육이라는 것을 전담 업무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제인권 규범과의 만남은 저는 이정도입니다.

 

황필규: 저는 변호사가 되기 전에 학위논문을 쓰면서 처음 접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 질문을 미리 받고 내가 국제 인권을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거나 접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확실한 물증이 있는 것은 석사 학위 논문을 쓸 때 국제법상 NGO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하면서 지도교수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지도교수님께서 제게 고민을 축소하라고 하셨고, 그 때 제가 관심이 가는 영역이 국제인권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국제인권법의 제정과 이행 과정에서의 NGO의 역할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국내에서 나온 문헌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 문헌을 보았는데 보면서 정말 저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죠. 한국에서는 이 문헌을 내가 최초로 읽는 걸 거야 하는 유치한 희열도 느꼈고요. 많은 문헌을 읽으면서 국제 인권 분야에 굉장히 복잡한 지형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수님이 교과서 쓰듯이 논문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지금은 교과서도 필요한 것 같다고 하면서 사실 조약이나 이런 부분들을 아주 교과서적 공부를 하듯이 논문을 썼고. 그러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분야를 조금 더 공부하고 실제로 변호사가 되어서 이런 분야를 활용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법 시험을 공부할 때부터 전업 공익 변호사를 꿈꾸었었는데 그래서 연수원 때도 연수원 커리큘럼도 있었지만 자체 커리큘럼을 가지고 경험 많은 선배분들을 쫓아다니고 자체적으로 스터디 그룹을 꾸려서 공부하기도 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논문을 쓰면서 습득했던 지식이나 연수원 때 다양한 분들을 접했던 지식을 통해서 연수원 수료를 하자마자 자유권 위원회 심의를 사실상 코디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실 저는 국제인권이 국제인권법이나 유엔 메커니즘과 관련된 것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다양한 이슈들, 초국경적인 이슈, 규범, 공간들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관심사 중 하나는 굉장히 오래 전부터 이주민, 난민 문제, 그리고 기업과 인권 분야인데요. 어떻게 보면 이런 이슈들 자체가 초국경적인 이슈이고, 다른 나라들과 같이 협력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이슈들인데, 이런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과정에서 변호사가 되어 실질적으로 관련 활동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동화: 저는 여기에서 사실 경험이 제일 짧아요. 제가 이 자리에 오게끔 한 경험의 대부분은, 민변에서 활동을 했던 것에 있다고도 할 수 있어요. 변호사는 아니었지만 제가 민변에서 국제연대 담당 활동가였거든요. 2007년 1월 처음 민변이라는 단체에 들어가서 국제연대 활동을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까 국제연대 활동이라기보다는 국제인권법을 활용하는 활동을 주로 하는 위원회더라고요. 그래서 어찌 보면 취업과 동시에 제가 배워야 했던 숙제 중 하나가 국제인권기구를 활용해서 한국의 인권을 올리는 활동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했던 것 같고. 아마 뒤에 ADI 활동이 소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희 단체를 소개를 해보면요. 어찌 보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시아 분쟁 지역의 인권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과 현지 피해 생존자, 현지 활동가들이 연대해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노력하기 위해서 만든 단체입니다. 이상입니다.

 

류민희: 감사합니다. 이 질문에서 조금 더 들어가서 개별적으로 후속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저희가 인권 관련한 기고, 법률 관련 서면을 쓰거나 할 때, 구글 검색을 하면 구글 번역본은 꼭 류은숙 선생님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인권운동사랑방에서도 활동하셨고, <인권오름>이라는 인터넷 아카이빙이 되는 곳에 연재가 되어 있고요, <류은숙의 인권문헌읽기>라는 강의도 있습니다. 이렇게 주로 활동가나 대중에게 문헌을 소개하는 일들을 많이 하셨고. <인권을 외치다>, <사람인 까닭에>, <심야 인권 식당> 이라는 단행본도 출판하셨습니다. 한권 쯤 다 가지고 계시죠? 이러한 집필로 인권의 가치를 녹여서 대중에게 쉽게 소개를 해주고 계신데요. 저는 인권 문헌의 전도사라는 표현을 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이런 작업에 대해 좀 더 애착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가 2009년에 나왔으니까 너무 오래 되었고요(웃음). <인권을 외치다> 이후의 문헌을 모은 것이 작년에 나온 <미처 하지 못한 말, 이제 마주하는 인권의 문장들>이라는 게 있어요. 제가 총 124편 정도를 인터넷 연재를 했고 이 책은 그 중 극히 일부만 뽑아서 낸 거예요. 왜 그것을 하게 되었냐면,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예전에는 인권에 대한 읽을거리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인권의 뿌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었죠. 독립선언서의 어떤 문구를 누가 맨날 주구장창 인용을 하잖아요. 행복추구권. 그런데 행복추구권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달랑 설명할 수 있을까? 독립선언서가 나오게 된 배경 같은 것도 알고 싶고 그렇잖아요. 프랑스 인권 선언이 그 당시 구체제와 맞서 싸웠던 모든 사람들의 열망을 하나에 뭉뚱그리는 것이 가능했을까? 다른 목소리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여성의 권리선언도 찾아 읽게 되고 프랑스 인권 선언이 담지 못 한 다른 시각의, 민중이나 인민이라 불리는 다른 사람들, 의회 밖에서 만들어졌던 목소리들을 찾게 되고요. 그래서 인권의 뿌리를 찾아야 된다는 생각에 맥락을 찾다 보니까 그런 문헌을 하나하나 찾아 읽게 되었고요. 그런데 사실 국내에서 나온 논문이나 이런 것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아는 구절만 딱 인용이 되어 있는 거예요. 의심이 발동하는 것이죠. 이 사람은 원래 문서를 읽어봤을까? 아닌 것 같은 거예요(웃음). 그래서 한 줄이 인용되어 있으면 원래 문서를 찾아서 실력이 되는 만큼만 번역을 해서, 그래도 되도록 문서를 다 보려고 애를 썼고요. 그러다보니 그렇게 쌓였고. 그런 작업이 처음에는 뿌리를 알고 싶었던 것이지만 요즘은 그래도 많은 분들이 굉장히 많은 국제인권 문서를 접하시잖아요. 유엔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그런데 저는 그런 작업이 여전히 정보가 많은 시대에도 유용하다고 보는 것이, 사람들은 말을 기존 언어의 울타리에서 가져다 쓰거든요. 혐오 발언을 많이 하는 사람들도 창조적인 게 아니라 원래 있던 혐오, 증오의 언어들의 풀(pool)에서 갖다 쓰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그것에 맞서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언어의 풀을 많이 늘리는 것이거든요. 풍성하게 하는 것. 그래서 인권의 언어의 풀을 늘리는 데 있어서 국제인권 규범이 담고 있는, 일정 정도의 이상향이고 일정 정도 보편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언어의 풀이 깊고 넓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풀을 많이 넓히면 넓힐수록 사람들이 자기 심정을 대변하고 싶을 때나 사회적 약자들을 옹호하고 싶을 때 마음껏 끌어다 쓸 수 있는 자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언어를 계속 찾아내는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제네바에 한 번도 안 가보고 국제회의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런 것을 읽고 인권의 언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한테 전도하는 것 자체도 훌륭한 인권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류민희: 다음 황필규 변호사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황 변호사님은 어떤 의미에서 법률가들에게 국제인권 전도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황 변호사님의 커리어를 따라 다니다가 국제인권 입문하고 지금은 동료가 되신 예전 로스쿨생 분들도 계시고요. 법률가분들에게 주로 국제인권규범을 소개하고, 어떤 때는 새벽 2시 텔레그램방에 “새로운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하면서 투척을 하시고 그것을 읽는 사람이 저고요. (좌중 웃음) 활동가들에게는 이런 인권 문제가 있을 때는 이런 국제기구, 이런 채널을 통해서 문제제기를 해볼 수 있다고 여러 방안도 소개를 해주시고. 정부에게는 국내적 이행의 책임을 강조하시고. 전방위적으로 활동을 하고 계세요. 아마 지금 가지고 계시고 있는 소송 건수보다 대응하시는 의제 수가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여러 수단 중에서도 국제인권규범의 활용에 있어 어떤 가능성을 보시고 계속 지치지 않고 참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황필규: 국제인권 하면 유엔, 영어가 생각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데요. 저는 국제인권적 접근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나 공간을 확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마치 우리가 민사 소송만 아는 사람이 행정소송이나 형사소송, 심지어 헌법소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적 수단뿐 아니라 국가인권위, 권익위원회 진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기업 관련된 사안이면 기업 내의 진정 절차를 활용할 수도 있는 것처럼요. 저는 국제인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규범적인 측면, 메커니즘적 측면에서도 어떠한 이슈가 있을 때 해결하기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과 툴 중의 하나이고 그런 툴이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어떻게 배치할 것이냐를 고민할 수 있는, 그래서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식 확장의 요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언어 말씀을 하셨지만, 규범 자체를 보았을 때 그것이 언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국제 인권이라는 것이 그동안 그 분야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미처 생각하지 못 한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국제 인권이라는 것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경우에는 인식의 틀을 깨는 역할을 해준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헌법 제12조 4항의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형사구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구금에도 적용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큰 사건이었어요. 사실 제가 몇 년 동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동안 한국에서는 누군가 헌법 교과서에 그렇게 쓴 다음에 베끼기가 이어지다 보니 ‘12조는 기본적으로 형사절차인데 예외적으로 6항만 행정구금에 해당된다’고 보는 틀이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국제적으로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구금되었다면 당연히 인정된다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구금되는 상황에서는 모두가 제약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이 틀을 깨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구금 상황 자체가 변호인의 조력권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었고요. 물론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국제기준을 언급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그러한 국제적 흐름이 헌법재판소가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형사 구금에만 적용된다’라는 틀을 깨는데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저는 국제 인권에 관한 흐름이 국내의 구체적인 소송에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큰 흐름의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항상 강의할 때 드는 예가 있는데요, 가습기 살균제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지고, 형사 소송, 민사 소송, 행정 소송, 진정이 제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등 국내적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절차일 것인데요. 그러면서 문제가 나왔던 것이 싱가폴에 있는 옥시 본사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범죄인 인도 이야기가 나오고 형사 사법 공조 이야기가 나오고. 사실 어떻게 보면 국내법도 있지만 조약과 관련된 문제이고, 그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고 얼마나 잘 운영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검찰에서 처음에는 범죄인 인도와 형사 사법 공조에 대해서 굉장히 큰 소리로 떠들다가 나중에는 이메일 보내서 오라고. 그랬더니 바빠서 못 온다고 답변하고 끝났잖아요. 싱가폴 옥시 본사 같은 경우. 얼마든지 국제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문제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유엔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유엔의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 유해물질특보에 진정이 이루어지고 그곳에서 코스트코, 옥시 같은 곳에 질의서를 발송하고 답변이 오고.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답변하는 내용 중에서 우리가 써먹을 수 있는 내용들이 나오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면 특히 몇 가지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있는데요. 투자자 중 노르웨이 연기금이 5위권이더라고요. 그런데 노르웨이 연기금은 윤리위원회라고, 투자가 윤리적이지 않으면 투자 철회를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요. 그런 곳에 진정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경우 뇌물죄에 대해서는 보편적 관할이 인정이 되어요. 그래서 외국에서 회사의 자회사가 그 나라의 비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어도 영국에 일종의 제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시스템을 활용 한다든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런 방법을 세상에 누가 아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이제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나중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그런 메커니즘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굉장히 다양한 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적절하게 배치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저는 국제인권적 접근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변호사라도 의료 사건을 안 해보았으면 의료적 지식이 없을 수밖에 없고 그랬을 때는 당연히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 혹은 변호사와 같이 일을 하면 될 문제이지 의료 사건은 동떨어진 문제라고 볼 것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류민희: 이동화 활동가님께서 처음에 민변 국제연대 간사로 입문하신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저는 그때 민변 실무수습생 꼬꼬마로서 활동하신 것을 기억하거든요. 조약 기구나 인권 이사회 이런 것의 코디를 많이 담당하셨는데 조정의 달인인가 싶을 정도로 활약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때 주로 그런 메커니즘 하게 되는 일이, 비유를 하자면 공중전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물론 현장의 목소리를 가지고 가는 것이지만 특유의 테크니컬한 메커니즘 때로는 공허할 수도 있는 활동이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ADI의 일원으로서 아시아 현장으로 완전히 내려가신 것인데요. 공중전을 하시다가 현장으로 완전히, 저는 혼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러한 커리어 변화가 의식적인 것이었는지 혹은 무언가 안 잡힌다, 현장에 가서 활동을 해야겠다 그런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동화: 질문지를 받고 저만 질문이 약간 주제와는 맞지 않는다(웃음). 국제인권 하다가 왜 다른 데로 갔냐(웃음). 제네바 이야기가 되게 많이 나오잖아요. 그리고 이번 실무학교 때 논의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희 주제가 ‘국제 인권 메커니즘의 활용과 인권 운동’이잖아요. 그러면 활용이 먼저예요. 그런데 활용하는 방법이, 제가 2007년에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전사는 전 잘 모르는데 제가 처음 입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사실 그렇게 대중적이거나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구조와 활용 툴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 처음 들어갔을 때 접했던 것들이, 항상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죠. 문제가 없이 할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제가 이명박 정권 시작과 박근혜 정권 거의 후반부를 담당했어요. 그러니까 2007년 1월부터 2016년까지 담당을 하다 보니까 다 터지는 거예요. 결정적인 것은 국내적으로 해결이 너무 요원한 것이죠. 정치적인 방법, 사법부의 방법,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사법부도 문제가 많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절박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툴들을 찾다보니 유엔의 인권 메커니즘을 저는 직업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주변에서 문제를 유엔 인권 메커니즘 활용을 원하시는 분들을 모아봤더니 너무 많으신 것이죠. 이명박 정권은 광우병, 소위 소고기 수입 하냐 마냐로 시작했잖아요. 그리고 4대강도 있었죠. 용산에서는 철거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죠. 수없이 많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국내적 해결 방안뿐만 아니고 소위 말하는 국제인권기구, 유엔으로 대표가 되는 기구를 활용을 했었고. 조약기구, 소위 헌장기구로 나누어지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활용했었죠.

그런데 하다보면 좋은 면도 있는 반면, 한계도 명백해요. 사실 유엔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럴듯한 면도 있지만 실상 더블클릭을 해보다 보면 이것이 국가 내에 강제력을 주지 못 하는 한계가 너무 명백하다 보니까 이것이 사실은 아주 직접적인 해결이 너무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말이 조금 돌기는 했지만, 아마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국제적인 인권 기구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나올 것 같기도 해서, 제가 ADI로 커리어를 변화한 것은 사실 국제 인권 메커니즘 별로 상관이 없이 저 개인적으로 이렇게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하다 보니 아시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이 얼핏얼핏 보였어요. 필리핀에서 활동가가 총을 맞아 죽기도 하고요 미얀마에서는 스님들이 기름 값이 올랐다고 자기 몸에 기름을 끼얹어서 분신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각국이 가지고 있는 인권의 수준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물론 한국은 굉장히 열악해요. 그리고 지금도 혐오라든지, 깜짝 놀랄 만큼의 인권의 낮은 수준이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눈을 돌려서 다른 곳을 보다 보니 그 모습에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 내가 가진 관심들이 서서히 이전되었던 느낌이 있었고요. 그래서 최근에 저는 로힝야라는 미얀마에서 쫓겨나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핍박을 받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 외에도 아시아에 정말 많은 어려운, 힘겨운 분들이 많거든요. 그러면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과 함께 연대해보고자 국제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과 손잡기 위해서 커리어 변화가 있었지요. 이상입니다.

 

류민희: 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이동화 활동가님이 힘들었던 2000년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90년대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이 78년에 인종차별철폐협약에 가입을 했지만 본격적인 활용은 91년 유엔 남북한 동시 가입부터 가능했던 것 같고요. 인권운동사에 1993년 비엔나 인권회의 참석이 큰 발자취로 기억이 되고 있거든요. 이러한 90년대의 흐름이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으로도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혹시 기억을 하신다면 90년대 인권운동의 맥락에서 우리가 특히 발견했던 가능성이 무엇이었을까요.

 

류은숙: 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을 하잖아요. 그런데 유엔은 사실 한국에서 굉장히 친숙한 국제기관이잖아요. 남한이 유엔이 세운 나라잖아요. 사실 상 그렇거든요. 가령 예를 들자면, 저희 어렸을 때는 이사 날 성냥을 선물했거든요. 그 다음에 하이타이가 되고 요즘은 휴지로 변했는데, 어렸을 때 사람들이 다 사가지고 오는 성냥이 유엔 성냥이에요. 만국기와 유엔 표시를 해서. 그러니까 유엔이 세운 국제기준이라는 게, 사람들이 인권이 아니더라도 유엔은 솔직히 굉장히 친숙한 것인데, 남북한의 상황 때문에 회원국이 아닌 시절이 오히려 길었던 것이죠. 91년에 가입하면서 가입국이 대부분 들어갈 때 일종의 의무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기초적인 국제적인 인권 규범에 대해서 비준해서 가입국이 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국제 인권 규범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갑자기 대거 알려지게 된 것이 90년대 초입니다.

그것이 인권운동에 주었던 충격이 무엇이냐면, 일단 우리가 해왔던 일에 대해서 재명명하는 것이 되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름을 어떻게 불러주냐는 굉장히 다른 문제가 됩니다. 저희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 ‘정신대’ 문제라고도 부르는. 그런데 그것이 명명이 그렇잖아요. ‘정신대’, ‘위안부’, 그거 다 누가 부르던 호칭이죠? 일본군이 부르던 호칭을 우리가 오랫동안 쓰면서 그것을 인권침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보통 무엇이라고 했냐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위 ‘가련한 민족의 딸들의 희생’, ‘민족의 수치’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국제 인권 규범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면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완전히 재명명하게 되죠. 민족의 수치이고 순결한…, 이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반인도주의적인 반인권 범죄이고, 전쟁 시 성노예, 전쟁범죄로 명명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사건을 재명명하게 되는 것. 그 이외에 숱한 국가 범죄들이 있잖아요. 국가 권력이 저질렀던 국가 범죄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대놓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국제 규범을 들어서 국가범죄라고 명명하고 그것이 사실상 처벌되지 않음, 진상이 규명되고 처벌되어오지 않은 것을 ‘불처벌’이라는 국제법의 용어로 재명명하면서 완전히 사건을 달리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되고. 저는 그렇게 재명명함으로써 그 사건이 그냥 2차 대전 때 있었던 일, 군사 독재 정권이 있었던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될, 책임질 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그것이 굉장히 주요했던 것 같고요. 일단 과거사 부분에서 제일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고. 국가보안법 같은 문제도요. 국가보안법이 우리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를 통해서 보니까 독재를 했다고 하는 나라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이 국제 연대를 통해서 같이 해결해야 되는 공통의 인권문제임을 알게 되는 것, 이런 것도 있고요.

국가인권위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거저 생긴 게 아니에요. 국제인권법이 있다고 그것대로 하는 정부는 없잖아요. 유엔에서는 오랫동안 국제인권법이 있고 각 국가에는 국내법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이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각 국의 정부나 법원은 국제인권법을 그대로 원용하거나 가져다 실행하지도 않거든요. 무언가 이식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그래서 국가인권기구의 설치를 유엔은 오랫동안 권장을 해왔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갇혀 있던 세계였기 때문에 그런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저희 예전에 해외여행 갈 때도 허가 받고 갔던 시대가 있었어요. 상상이 안 되시겠지만 그게 풀린 게 88년인가 89년이거든요. 해외여행 자유화 된 것이 그 정도 역사 밖에 안 되어요. 그러니 국제적으로 이런 것이 있다고 우리가 알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 한국의 인권운동가들이 국가인권기구의 존재를 알게 됐고, ‘국제 인권법을 국내에 제대로 전달하고 실행을 감시하는 국가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구나’하고 깨닫고 돌아와서 4, 5년 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서, 한여름, 한겨울의 두 차례 단식농성을 비롯한 노력 끝에 세워진 기구입니다. 이게 정부에서 선물로 짠하고 준 게 아니거든요. ‘국제 규범이 있고 그것을 국내에 이식하려는 숱한 구체적이고 끈질긴 노력들이 있어야지 우리가 하나의 새로운 제도와 기구를 갖게 된다.’, ‘2001년에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는 93년도에 알게 된 앎으로부터 십여 년 에 걸친 실천을 통해서 우리 땅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황필규: 저는 별로 한 것은 없는데요. 한국은 60년대에는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을 가입했어요. 70년대에는 인종차별철폐협약을 가입했죠. 왜 가입을 했을까요? 60년대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을 가입한 것은 너무 이해가 되어요. 무국적자가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입을 한 것이죠. 70년대 인종차별철폐협약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우리는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인종 차별은 꿈도 꿀 수 없다. 단일 민족이고 순혈주의이기 때문에 꿈도 꿀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2000년대 들어와서도 유엔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가‘우리는 단일민족이고 순혈주의라서 혼혈이 없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거의 없다’고 발언을 해서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죠. 이 말이 한국말로 하면 별로 느낌이 안 오지만 영어로 하면 굉장히 문제적이거든요. ‘pure blood, mixed blood’라는 말이 나치가 연상이 되고 난리가 났었죠. ‘실제로 그런 말을 쓰냐’는 질문에 한국 정부 관계자가‘아니 우리는 순혈주의 단일민족이 맞다니까요’ 하고 답을 해서 원래 조약기구에 별로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 분야가 국제적 흐름을 많이 받은 영역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90년대에 아동권리협약에 대한 공식 번역본을 보면,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지금도 아마 안 고쳐진 것 같은데요. 차별금지 사유 중에 장애 disability 가 있는데 그것을 무능력으로 번역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대한민국은 disability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대충 보니까 ability에 dis니까 이게 무능이다. 그래서 무능에 의한 차별을, 아동들은 무능해도 차별하지 않는 것으로(웃음) 협약이 번역이 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기는 하지만 여전히 국제 기준 같은 것들이 거리감이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관련 내용을 직접 다뤄야 할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대표적인데 헌법이 국제인권법 혹은 국제법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전히 아무도 정확히 정리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전혀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살펴보면 변호인 접견권의 경우 ‘가시거리에서는 감시할 수 있지만 가청 거리에서는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 유엔 총회 결의인데 헌법재판소가 그것이 마치 헌법 판단의 기준인 양 사실상 인용을 하면서 유엔 총회 결의를 갑자기 존중하기도 하고. 세계 인권 선언이나 이런 것은 구속력이 없지만 존중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기도 하고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계속 인용하는 것이죠. ‘국내 헌법재판소도 이렇게 국제인권기준을 존중하라고 했다. 그래서 국내법과 배치되지 않으면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약간 무리해서 펼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굉장히 당황스럽지만 조금씩 수용해 들어가는 측면이 있었고. 영역에 따라서는 굉장히 결정적인 기여를 한 영역들도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차분하게 쌓여간다기보다는 개개인들이 어떤 충격을 받고… 예를 들면 비엔나에 다녀오신 분들이 충격을 받아서 계속 그것을 이어가시는 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한 것이 있었지만 여전히 90년대는 애매하고 과도기적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류민희: 이동화 활동가님은?

 

이동화: 그때 없었어요(웃음).

 

류민희: 어제 패널 중에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활동하신 개인과 단체가 있어서 축하를 드렸거든요. 어제 김수정 변호사님, 국제 앰네스티 이경은 사무처장님이 계셔서 박수 치고 축하를 드렸는데. 아마 양심적 병역거부가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적절히 활용해서 문제를 조금 더 진전 시킨 예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아마 한국에서 가장 자유권 개인 진정이 많이 들어간 것이 양심적 병역거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희가 한국에서 인권 침해를 문제제기 하려고 할 때 국제 인권 메커니즘만 쓰는 경우는 없거든요. 아까도 황 변호사님이 입체적인 방식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저희가 이슈를 알리기도 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국내적으로 소송, 진정, 입법적 시도도 하고 국내법적 수단을 다 쓴 경우 개인 진정을 하기도 하고 특별 절차를 밟기도 하고 이사회에도 가기도 하는데. 특히 이렇게 입체적 운동 전략에서 하나의 수단으로서, 특히 이 문제에 있어서는 국제 인권 메커니즘이 적재적소에 잘 쓰여서 한국에서 잘 되었다고 생각되시는 게 있으면 하나씩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황필규: 원래 이런 평가는 굉장히 주관적이거든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혼자, 내가 영향을 미쳤을 거야(웃음). 그런 영역 중 하나가 이주노조 사건입니다. 체류 자격 없는 분들도 포함하는 이주노조가 노조 신고를 하니까 반려 처분을 했죠. 체류 자격이 없는 이주노동자가 노조에 있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취지였고 1심 판결에서는 그런 취지로 판결이 나왔습니다. 원래 노조라는 것은 장래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만드는 조직인데 체류 자격, 취업 자격도 없는 사람이 장래의 근로 조건을 개선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냐. 법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이 1심 판결이었고요. 그리고나서 2심 진행할 때 제가 결합했습니다. 그때 민변 차원에서 변호인단을 모집했고 원래 하시던 분과 같이 소송을 했던 거죠.

그 당시에 체류 자격 없는 이주민의 노동 3권과 관련해서 국제 문헌을 모조리 다 뒤졌습니다. 유엔의 조약, 일반 논평, 결정례, ILO, 이주인권재판소, 유렵 평의회, 스페인 헌재 판결, 미국 대법원 판결,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아서 융단 폭격을 가한 것이죠. 그랬더니 원래 자체 소송을 하다가 정부 측에서 대형 로펌을 고용하더라고요. 정부도 너무 당황했겠죠. 상대방이 다 국제 기준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해서 대형 로펌을 고용하시기는 했는데, 대형 로펌 변호사가 국제 인권법을 아나요. 당시 조약법의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엉뚱하게 답변을 하기도 했고요. 저는 그런 면에서 일단 국제규범을 활용한 것이 봉쇄 효과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소심 판결이 전혀 국제 기준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결론은 바뀌었어요. ‘체류 자격이 없어서 단속되고 강제 퇴거시키는 것과 사용자와의 불균등한 관계에서 불균등한 관계를 보완하고 인권적인 측면에서, 사회 안정적인 측면에서 그동안 노동 사건이 가졌던 의미는 체류자격과는 전혀 무관하게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인데 그 두 개를 합쳐서 무력화 시키는 방식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당연히 노동자라면 체류 자격이 없더라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소송에서는 그런 식으로 활용이 되었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이주노조 사안은 대법원의 경우 7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행정 사건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대법원이 결정을 안 한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대법원이 가장 오랫동안 결정 안 한 민사 사건은 미국 회사를 상대로 한 고엽제 소송이었는데.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법원이 미국 회사에 책임을 묻는 것이랑 이주노동자한테 권리를 주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집단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과정이 하도 오래 걸리다보니까 조약 기구, 모든 기구들이 활용되었던 것입니다. 사회권 위원회, 자유권 위원회에서도 계속 이 사안과 관련된 언급이 있었고, ILO 국제노동기구에도 진정이 들어가서 관련 결정례가 나오고. 그래서 사실 일반적인 국제 기준이나 비교법으로 봤을 때도 당연히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았지만 그 과정에서 유엔기구나 이런 곳들에서 한국에 대한 권고나 결정들이 쌓이면서 어떻게 보면 법 관점에서도 그것을 직접 인용하지 않더라도 과연 감히 그것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국내적인 노력이 당연히 있었지만 그 부분은 분명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동화: 활동을 하다 보면 약간 피해의식에 쩔어요(웃음). 무슨 이야기냐면, 권고는 잘 나와요. 그런데 이것이 제도화되고 실효화 되는 것은 지난한 문제거든요.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말 역사적인 판결이에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조약 기구, 특별 절차, 소위 유엔 기구에서는 모두 다 대체 복무제를 도입을 해야 된다고 수십 년 간 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러면 성과이기도 하죠. 그래서 기뻐야 되는데. 일단 가슴 속에서 짜증이 팍 나면서 ‘이렇게 할 거를 왜…’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잘하면 이게 정권의 성과로만 갈 수도 있고. 너무나 우리의 인권운동과 시도들이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의해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후퇴될 때도 있고 이렇거든요.

사실은 무엇이 변했냐는 이 질문이 받아보았을 때 저는 일단 한숨을 푹 쉬었어요. 저희가 조약 기구에서 정례적으로 보고서를 내면 정부는 쫙 설명해요. 이것이 변했고 이것 생겼고 이 제도가 들어왔고요, 이렇게 써요. 쭉 봤거든요. 난민법 들어왔고, 형법 상 강간죄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화하였고, 장애인권리협약 가입했고 자유권 규약…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기는 해요. 사실 이것을 폄하할 수는 없죠. 어떤 일로서든 간에 변화는 많이 있고. 아까 말씀 드린 이주노조 관련해서 대법원 판결이 난 것도 정말 역사적이었거든요. 일정 부분에서 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한 활동과 국내에서의 강고한 연대세력들, 여기에 조응하는 정치권의 응답 정도가 열렸을 때 가능한, 정말 안타깝지만 들인 공에 비해서(웃음)… 이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정부 보고서에는 많이 변화가 되었다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요즘은 더 그런 것 같아요. 이건 진짜 참 답답하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어서, 이 질문은 패스(웃음). 인정 못 하겠다.

 

류은숙: 방금 약간 비관적 말씀을 하셨으니 저는 좀 낙관적으로 말씀을(웃음). 균형을 맞춰보려고 하는데요. 저는 국제 인권 규범의 효과적 활용이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서 말하는 규범이 이거라도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아동, 여성, 이주자, 노인 같은 사람들은 대리되지도 않고 대표되지도 않아요. 아동을 위해서 출마하는 정치인 없죠, 이주자를 대변하는 정치인 없어요. 여성이 인류의 절반이라고 하지만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정치인 진짜 드물잖아요. 노인은 유엔에서 말하는 ‘노인의 인권 기본 원칙’인가가 있어요. 아직 국제 조약도 아니고 그 수준이 노인의 인권을 옹호할 때 인용될 만한 유일한 기준이다시피 해요. 그러니까 국내적으로 전혀 대표, 대리되지도 않고. 그러면 그 사람들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는 기준도 없거든요. 그렇게 막막할 때 국제인권기준이라는 것이 그렇게 말 못 하고 표현되지 못 하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입장을 정말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기준으로서 제시되는 것이 저는 그것이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출발점이 되어 주니까. 제 경험에서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그런 톡톡한 구실을 했다고 보는 것이, 여러분들도 아동과 청소년기를 지났으니 여기를 오셨겠지만 되게 힘든 기간이잖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아래로 찍어 누르는 문화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우리가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가지고 인권 단체들이 운동하기 전에는 아동 관련 행사이든 보도 기사이든 쓰는 용어가 정해져 있었어요. 아동에 대한 보호, 훈육, 육성. 단어들이 냄새가 좀 그렇지요? 보호, 훈육, 육성. 여기는 어디에도 권리가 없어요. 그런데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통해서 우리가 국내 아동 관련 일하는 단체들과 같이 협약을 공부하고 공동 캠페인을 하면서 조금씩 단체들이 자신들의 규약이나 홍보 문구들을 바꿔서 쓰기 시작하거든요. ‘아동에게도 권리가 있다’. 제가 이 캠페인을 하면서 중앙 일간지 중 하나가 최초로 어린이날 기획 기사에서 쓴 제목이에요. ‘아동에게도 권리가 있다’. 그 전에는 안 썼거든요. 보호, 훈육. ‘오늘날의 10대, 이대로 좋은가’. 이런 것만 쓰다가 ‘아동에게도 권리가 있다’가 된 거에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청소년 당사자들의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학생인권조례 같은 경우는 순전히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 출발한 논의에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민주교육감이 선거에서 붙었다고 선심으로 해준 것이 아니에요. 청소년 인권운동이 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꾸준하게 요구해왔기 때문에 압력으로서 이것이 나중에 채택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학생인권조례의 뿌리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에서 힘을 얻어야 되고 지금 충분히 자기의 권리가 언어화되지 못 하고 대표되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응당 어떠한 권리가 있어야 되는가를 보여주는 표지판, 이정표 또한 지금으로서는 국제기준에 있다고 봅니다.

 

류민희: 역시 오래 하셨기 때문에 승리의 기억도 가지고 계시네요. 저도 국제 인권 메커니즘 참여하면서 좌절했던 기억도 나고. 아까 정부 이야기 하시니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요. 그런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장점이, 정부의 민낯이라고 해야 하나요? 조악한 답변을 드러나게 하는 것, 정부의 입장이 이 수준이구나 하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야 그 언어를 가지고 우리가 이것이 무엇이 문제라고 하면서 규탄을 할 수가 있는데요. 활동가님들이 이야기하시니 기억이 나는데 저는 예전에 자유권 규약에 갔다가 정부 답변이 너무 심각해서 놀라서 울었던 적이 있거든요. 지금 제 인권 운동사의 흑역사로 남아 있는데요. 그래서 저희가 적재적소에 권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사용을 했던 예들을 기억을 해보았는데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필요할 때 저희가 이것을 정말 잘 활용했나 생각을 해보게 되는, 자아비판일 수도 있었는데. 그때 이거 한 자라도 써서 보냈어야 했는데 그때 놓쳐서 시기를 놓쳤다, 그런 생각도 들고. 물론 저의 해외 동료 같은 경우는 왜 한국은 조약 기구 개인 진정 다섯 개 할 수 있는데 아시아에서 거의 최대로 많이 할 수 있는데 너희는 개인 진정을 많이 안 하는 것 같다. 이런 표현도 하더라고요. 물론 우리가 1년에 10개 씩 해야 된다, 이런 쿼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것,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있나? 활동가로서 좀 더 생각해야 되는 것이 있나 그런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30년 좀 안 되는 국제인권 메커니즘 운동사에 있어서 저희가 충분히 활용을 했는가, 충분히 효과적이었는가. 이런 점에서 고민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류은숙: 되게 어려운 질문이에요. ‘충분히’라는 질문에는 ‘충분히’라고 답을 할 수가 없죠. 늘 모자라고 결핍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일단은 반성을 하자면 편식이 심했다는 것. 예를 들어 내 문제에 가까운 것은 열심히 파서 열심히 활용하지만 남의 문제에 해당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잘 보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좀 전에 말씀 드린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권리가, 모든 아동은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 아동의 시민권 선언에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우리가 한국 아동들만 생각하면 그 조항을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건 아동 인신매매, 무국적 상태 등 이런 것들을 생각하여 만든 귀중한 조항인데 잘 활용 안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이것은 우리 문제이거든요.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들 중 부모의 불안정한 신분을 이유로 무국적인, 그러니까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런 아동들의 문제가 있는데 그런 문제는 우리가 잘 살피지 않고 같은 국제 조약을 보더라도 우리가 정부와의 싸움에서 빨리 써먹을 것은 열심히 연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약간 제쳐놓는다고 할까요. 그러한 편식이 반성이 되어요. 세심하게 보아야지, 이것이 지금 나의 문제가 아니니까. 이것이 굉장히 단견 같아요. 아까 황필규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종차별 우리 없어, 난민 없어, 이런 식의 것이 얼마나 단견이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국제인권협약을 대할 때도 한국에 해당하는,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것은 열심히 보는데 인종차별이나 이주자에 대한 것들은 활동가들도 초창기에 공부를 별로 안 했거든요. 활동가들도. 이런 편식과 내 문제 우선 이런 것. 되게 반성되지만 요즘에 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이러한 것들을 극복해 나가려고 노력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그런데 세심함은 늘 가져야 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황필규: 당연히 말씀하신 대로 여러 의미에서 충분하게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요. 일단은 아무래도 국내적으로 국내의 언어로 하는 것보다는 많은 시간과 노력, 자원이 확실히 더 필요한 부분들이 있고. 그런데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서 효과면 에서는 국내적인 절차보다는 덜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었던 것 같고요.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확장시키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쪽, 특히 기업과 인권과 관련해서 잠재적 인권 침해자라 볼 수 있는 기업 쪽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예전부터 초국경적인 접근을 항상 해왔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유엔이나 미국이 이란을 제재 한다고 하면 변호사들은 돈을 벌어요. 왜냐하면 자문을 하니까. 그 제재가 있으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기업이 어디까지 하고 빠져야 언제 돌아갈 수 있고. 이런 자문들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죠.

그런데 점점 유엔의 기준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만 그러한 중간 영역들, 특정 국가의 법인데 보편적 인정이 된다든지. 아니면 법적인 조치는 아닌데 행정적인 조치로 여러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가 이루어진다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기업 쪽은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 있는 기업의 공급망, 강제 노동과 관련된 부분인데 Modern Slavery Act라는 것이 있는데 기업 쪽에서는 이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면서 그 부분을 비껴가려고 하거나 준수하려고 하는 식으로 접근을 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과 관련해서 인권 침해를 지적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는 제대로 대응을 못 한다든지. 사실은 그 중간 영역에 대한 고민도 그동안 거의 없었어요. 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사법 농단 같은 경우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찾아봤어요.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헌을 찾아보니, 중대한 인권 침해를 한 사람에 대해서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입국을 못 하게 하고 재산을 동결 시키는 그런 방법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요건이 미국의 경우에는 고문에 준하는 경우에만 해당되고, 영국은 조금 더 넓게 인정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국내적인 대응이 없다면 그런 것을 저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적어도 양승태씨를 미국에서 입국 거부 대상이 되게 해서 창피라도 주어서 본인에게 반성하게 만드는 그런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법들이 사실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형법도 사실상 관할이 되게 넓거든요. 한국인이 전 세계에 저지른 형사 범죄에 대해서 국내에서 기소할 수 있는 경우가 흔치 않거든요. 형법 공부하신 분들은 너무나 당연한 조항으로 공부를 하셨겠지만 그런 조항을 두고 있는 나라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까지 고민하면 더더욱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유엔 시스템만 놓고 보아도 워낙 이것이 메커니즘 활용이라는 면에서는 느슨하고 체계가 없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충분하게 하려면 밤을 새도 시간이 부족하죠. 그런 시스템적 특징이 있어서 어렵긴 한데. 그래서 충분히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잘 배치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국제인권을 하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논의하고 잘 배치해서 진행을 하는 과정들이 조금씩은 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동화: 앞의 답이 너무 부정적이고 피해의식의 발로로 나온 답변이라(웃음). 이번 만큼은 조금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어떻게 충분히 활용했는가에 대해서 충분히 활용했다고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일단은 질문 자체가 너무 어려워요. 이 기구와 활용할 수 있는 영역들은 일정 정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가 얼마나 그 영역을 차지해 나가느냐의 역량의 변천사를 보면 발전적이죠. 왜냐하면 활동하는 사람, 관심 갖는 단체들도 늘었고. 그리고 류은숙 선배님도 말씀 하셨지만 인권이 가지고 있는 소수자들의 대변역들도 사실은 확장되고 있거든요. 정치권이든 행정부 차원에서든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가져가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정말 최선의 다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애매한 거예요. 어쨌든 정말 많은 노력을 활동을 했거든요. 이것이 어쨌든 다른 나라의 기구이고 영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굉장히 테크니컬한 과정들이 있거든요. 절차, 시기에 맞춰야 하고 내용을 맞춰야 하고 적합해야 하고. 이것을 사실 활동가들, 법률가들, 피해 당사자들과 함께 했던 역사를 미루어보면 사실 충분히 활용했다는 질문에는 답변이 어렵지만, 얼마나 이 제도에 대해서 절박하게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었냐는 것은 사실 저는 ‘예스’라고 할 수 있고요. 그리고 이 노력과 시도들이 세상에 미쳤던 변화는 아직은 그렇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물이 퍼져나가듯 천천히 번져나가는 것이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확장 가능성은 높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실 실제 제네바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사실 국가 대 국가, 단체 대 단체 솔직히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을 수가 없잖아요. 한국의 NGO라든지 한국에서 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영향은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많이 늘어났다고 전 생각해요. (좌중 웃음) 정말 정부 관료들과의 싸움, 현장에서의 싸움들이 그대로 가거든요. 국내에서 공무원들과 싸웠던 그 전선이 사실상 제네바에서 그대로 유지가 되어요. 그 안에서 현장 활동가들, 옹호하려는 저희 같은 국제 연대 활동가들, 법률가들, 현장의 피해 생존자들 다 직접 제네바 현장에 함께 대동해서 직접 전달하려고 하는 여러 운동의 변천사는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 역할들은 단기간에는 보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계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류민희: 우문에 현답으로 대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국제 연대만 담당하셨던 활동가 분들은 때로 자조적으로 다 인권 침해 구제 다 써먹고 안 되겠다, 그냥 국제 연대 와봐, 한 다음에 이제 이것은 국제 쪽으로 가보자.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 이렇게 자조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많은 활동가분들이 의제가 진전한 경험도 하셨기 때문에 최근에는 진짜 입체적으로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수단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황 변호사님께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우리가 공익인권법 실무학교인데. 변호사로서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요. 송무 변호사로서 한국에 국내법적 효력이 있는 국제 인권 문서를 적극적으로 서면에 녹여서 활용하는 방식도 있겠고, 조약 기구나 UPR 같은 유엔 인권 보고서에 대해서 시민사회가 보고서를 같이 쓰는 방식도 있겠고. 수단마다 모든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잖아요. 개인 변호사의 일이 아닌 것도 있고 하려면 적절하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혹시 변호사, 법률가를 상대로 하는 교육에 있어서 좀 더 강조점을 두는 부분이 있는지요.

 

황필규: 최근 국제 기준을 활용해서 진행한 소송이 있었는데요. 제가 한 것은 아니고 담당하신 분들이 여기 자리에 앉아 계신데요. 저는 이 소송에 대해 사안이 워낙 어려워서 국제 기준을 활용한다고 해서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힘 빠지는 조언을 해드렸는데 승소를 하셨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아, 주위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은퇴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정말 굉장히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이야기한 행정 구금된 사람들에 대한 변호인 조력 관련 사안만 하더라도 저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최근에 체류 자격이 없는 이주 아동이 성년이 되어 버린 경우에 대한 소송이 있었는데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원래 체류 자격이 처음부터 없었는데 체류 자격을 주어야 하냐는 문제. 이 분에 대해 강제 퇴거 명령은 이미 내려진 상황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강제 퇴거 명령이 취소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국제 조약뿐 아니라 개별적인 결정례들과 같은 것들이 충분히 활용된 서면이 작성이 되었고 기본적으로 판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러한 구조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결정례 같은 것들이 구속력은 없지만 결국은 설득 구조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설득 구조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미국, 일본, 독일의 판결에 근거한다는 권위까지 가세가 되면 구속력 있는 기준 못지않게 굉장히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고 그런 규정들을 당연히 다 알 수는 없겠죠. 그 서면을 쓰신 분들은 그런 결정례가 있다는 것을 원래 알았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사안을 다루면서 찾아보는 것이겠죠. 그래서 저는 다른 법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모든 법률가들의 가장 기본은 어떤 이슈가 던져졌을 때 최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고, 어디에서 관련 이슈,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지만 알면 되는 것이에요. 찾다보면 노하우도 생기거든요. 구글링도 하다 보면 어떤 입력어를 넣어야 하는지 많이 써 본 사람들이 다르듯이. 어디서 찾아야 하나 라는 부분에 대한 경험을 직접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한 집회 참가자가 경찰 지침에 근거해서 체포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받았어요.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소송도 있었는데, 당시 관련 사안에 대해 국가인권위 진정이 있다는 것을 메일링 리스트로 받아보았어요. 제가 관여했던 것은 전혀 아닌데. 저는 열 받으면 굉장히 검색이 잘 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밤에 열이 받은 거예요(웃음). 그래서 막 구글링을 하다 보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판례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사안은 똑같고. 거기에도 경찰 지침이 있었지만 지침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 침해의 원칙이나 이런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브래지어 탈의는 불법하다는 것을 찾게 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최근에 IOC 평창올림픽 때 한국 조직위원회에서 수화 통역을 준비를 했었는데 IOC에서 그것을 못 하게 하는 바람에 수화 통역을 못 했다고 해서 이것을 어떻게 진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요. 국내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도 제기할 수 있겠죠. 그리고 유엔 메커니즘 중 장애인권리협약이나 특별보호관 진정도 생각해볼 수 있고요. 그리고 IOC에 뭐가 있는지 찾아보니 IOC 윤리위원회가 있더라고요. 이 절차를 활용할 수도 있어요. 만약 유엔 진정을 하면 국제기구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이 또 복잡한 논의가 될 수도 있는데, IOC 내 윤리위원회 진정은 IOC 자체가 무언가 윤리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회원국이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활용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찾아보니 IOC 윤리위원회 위원장이 반기문씨 더라고요. 이럴 때는 IOC 윤리위원회를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유엔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보다 더 여러 가지 면에서 대상도 명확할 수 있고 code of conduct에 기본적으로 평등 관련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더 적절하겠다고 판단할 수 있겠죠. 사실 이런 것들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도 합니다. 마치 법률가들이 법을 찾다보면 어디에서 찾는지를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10년 지난 변호사와 1년 지난 변호사가 차이가 있듯이요. 기본적으로 언어적, 비용적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데 언어적 문제는 언어가 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됩니다. 오히려 그 이슈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언어보다 당연히 훨씬 중요하고요. 최근에는 영어를 잘 하는 변호사 분들도 많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언어적인 문제는 예전에 한때는 정말 걸림돌이 된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크게 문제가 안 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확실한 것은 직접 경험을 해보시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죠. 제가 국제노동기구의 진정 메커니즘 강의를 여섯 번, 일곱 번을 들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났어요. 한 번도 활용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죠. 그래서 가능하면 작게라도 부분적으로라도 같이 결합을 해서, 꼭 제네바를 가지 않더라도 경험을 하시면 확실히 노하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류민희: 저희가 유엔 인권 메커니즘, 그 중에서도 조약 기구라든지 이런 식의 실무를 대응하다 보면 준비가 된 채로 대응하게 될 때는 없고, 하는 대로 던져지게 되잖아요. 그러면 이제 공부를 해서 준비를 해야 하겠다 할 때는 규범이나 문헌 같은 것들은 류은숙 선생님 것을 찾아보고, 제네바 가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 찾다 보면 이동화 활동가님 글이 나와요. 몇월 며칠 제네바 도착, 국제금속노조 누구 미팅, 제네바 내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함. 자세하게 하루가 다 나와 있어요. Oral Statement 준비, 런치 브리핑을 위해 샌드위치를 사다. 이런 정말 자세한 일지들을 남기고 오셔서 뒤에 활동가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따라갈 수가 있는데요. 그 수고 많던 현지 대응 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동화: 해프닝이 큰 것이 하나 있어요. 아까 사회권 규약 위원회의 한국 심의가 90년대 초반에 있었고 제가 있었던 3차 때가 2009년, 2010년이었어요. 그런데 조약 기구 심의위원회를 하다보면 국가별로 이슈가 많기 때문에 본심의 하기 전에 pre-sessional working group이라고 해서 이 국가의 문제가 무엇인지 전문가 몇 명이 초기에 모여서 논의하는 회의가 있거든요. 저는 사실 인종차별철폐 보고서 심의 때가 처음이었어요. 앞에서 황 변호사님이 말씀하셨던 ‘pure blood, mixed blood’ 말이 나왔던 게 제가 처음 갔던 회의거든요. 진짜 그때 정부 답변자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지 몰라요. 그냥 정말 떳떳하게 한국은 단일민족이고 순혈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확률이 낮다고 이야기를 한 것인데 위원들이 정말 열이 뻗쳐서 ‘이게 말이 되냐, pure blood란 것이 도대체 무슨 blood냐’이렇게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있었고요.

사회권 때는 저도 경험이 한 번 있어서 현지와 소통을 시작을 했고 준비를 했었는데요. 사실 준비 과정과 현장에서 대응하는 것, 다시 한국에서 이행 활동하는 것으로 구분을 하면, 현장 가면 활동가들 굉장히 긴장이 되잖아요. 돈도 엄청 깨지고 사실 이 모든 과정을 영어로 해결해야 되고 내가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보고서를 내가 설명해야 되는데.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엄청 잘하냐하면 또 그것도 아니고.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딛고 제가 제네바에 갔어요. 그런데 담당자가 저를 보면서 너무 당황해 하는 거예요. ‘너 여기 왜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았냐, 내가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 pre-sessional working group을 월요일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고 했는데 그게 금요일이라는 거예요. 금요일 날 한국 보고서에 대한 pre-sessional working group의 NGO 시간이 금요일이었던 거예요. 오타가 난 거예요, 유엔에서. 진짜예요.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유엔에서 금요일인데 날짜를 월요일로 알린 거죠. 저희는 월요일에 맞춰서 모든 전투력을 끌어와서 월요일 오전에 미팅을 들어가려고 만났는데, ‘왜 왔냐, 오타다. 그럼 어떻게 할까’라고 해서 저희는 완전 당황하고. 사실 비용도 금요일까지 있을 비용이 없었거든요. 해결을 봐야 되니까 진상을 좀 부렸어요. ‘너희 잘못 아니냐, 너희가 오타 낸 것이니까 당장 우리를 들여보내 달라’. 그래서 그때 담당관이 정말 난처해했었는데, 그런데 당시 NGO가 들어가지 못하는 회의가 주재되고 있었는데 저희가 오후에 들어갔어요(웃음). 그래서 위원 분들도 당황했고요. 저희도 뻘쭘해 하면서 설명을 한 적이 있죠.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했던 기억이 있고요. 그래서 그때 제가 얻은 교훈은, 기구를 활용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스킬적인 부분이 있지만 담당자와 계속적인 연락을 해야겠다. 초창기에 메일을 한 번 보내고 그 다음에 보고서를 보낼 때 메일 보내고 현지 가서 만나서 악수하는 방식은 안 된다. 계속 연락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정말 많이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공했어요, 어쨌든. 그때 권고 진짜 잘 나왔어요.

 

류민희: 제네바 가시는 한국 활동가분들 다 비장한 마음으로 가시거든요. 단체 재정의 꽤 큰 부분을 할애해서 가는 것이고. 맨날 밤새 일하고 오고. 제가 만난 제네바 외국 동료들은 한국 사람들 왜 그러냐고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대응에 대한 역량도 대단하다는 평가도 많이 받고. 정말 비장한 마음으로 제네바를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넓게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유엔 메커니즘 위주로 이야기를 한 것 같아서요. 사실 한국 인권운동사에서 또 다른 결의 활동인 국제 연대 활동이 있는데요. 국제노조 운동이라든지 반빈곤, 세계화 반대 투쟁이라든지 이런 연대 투쟁도 있고 아시아나 국제 차원 그룹핑이나 네트워킹 같은 활동들이 있는데요. 이런 활동에서 외국 동료들을 만나면 조금 더 힘을 받거나 하는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류은숙: 일단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우리의 만족도를 떠나서 상당히 좋게 평가를 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우리의 힘만으로 한 것이 아니거든요. 제가 인권운동에서 보아온 것으로는 숱한 양심수들에 대해서 외국에서 소리 없이 지원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예를 들면 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적 탄압을 받아서 사형수까지 갔었잖아요. 그분을 후원하는 분들을 만나보면 평범한 외국의 시민이에요. 주말마다 시장에서 자기네가 직접 구운 과자나 케이크를 팔아서 모금을 해서 활동을 하는 식으로 한국의 양심수들을 지원하는 분들이 전 세계에 있어요. 일본만 해도 한국의 양심수들을 십 수 년 간 한명을 책임지고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쳐서 양심수 한 명을 돌보는 분들 너무 많거든요. 인권운동 하면서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감격스럽고 고맙고 그래요. 그런 식으로 우리가 받아온 것이 엄청나게 많다. 90년 들어 제가 경험한 것은, 받기만 하는 데에서 같이 하거나 돕는 단계로 나아간 예를 말씀을 드리면. 동티모르라는 나라 들어보셨나요?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나라잖아요. 90년대 동티모르의 독립 운동가들이 한국을 자주 왔는데 그건 한국의 인권단체들이 초청해서 온 것이에요. 동티모르를 지원하는 시민모임 같은 것들을 만들고 해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로서 받았던 인권침해에 대해서 실상을 폭로하고 자신들의 독립이 얼마나 정당성이 있는가.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결국 독립에 성공했죠. 그때 우리가 초청해서 돈이 없으니까 호텔에서 재울 수가 없으니까 활동가들의 집에 재우고 밥도 그냥 같이 먹고 그랬던 분들이 나중에 국무총리가 되고 그래서 (좌중 웃음) 황당했어요. 그 이후에 너무 속상하지만 부패 세력으로 비난 받게 되면서 아, 인생은 오래 두고 봐야 되는구나(웃음). 그런데 아무튼 그 나라가 독립을 이뤄내기까지 한국의 인권운동이 그런 것을 같이 한다는 것이 너무 뿌듯했었고. 아르헨티나 5월 광장 어머니회 아시죠? 세계적으로 인권단체로 굉장히 유명한 곳인데. 그 어머니를 초청해서 일주일 간 초청 행사를 하면서 아까 말씀 드린 국가 폭력에 대한 불처벌 개념에 대해서 그런 분들께 배우기도 하고. 한국에도 숱하게 고통 받는 어머니들이 있는데 거기는 실종자 가족들이잖아요. 이 고통을 서로 나누며 연대하는 것. 어머니가 아니라 이제 할머니가 되신 분들인데 평생을 싸워온 백전노장들이잖아요. 거기에서 느끼는 힘, 말이 필요 없는 힘을 느끼는 것도 좋았고. 국가보안법 국제 심포지엄 같은 경우도 저희가 했어요. 아시아 지역의 비슷한 법을 가지고 있는 곳, 말레이시아 등등 십 여 개국의 법률 전문가와 활동가들을 불러서 국가보안법을 같이 없애자고 했을 때 한국의 운동이 중심에 서서 준비를 하고 그런 이야기를 모아냈을 때 되게 뿌듯했었거든요. 그런 것을 하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냐면 국제연대라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이건 나만이 앓고 있는 병이 아니라 같이 앓고 있는 병이다. 그리고 동료가 있다. 우리가 같이 고민하면 이 병을 같이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자주 만나지 못 하더라도 아플 때마다 느껴지는 거예요. 우리가 고통 받을 때마다 저 사람들도 이런 것들 때문에 힘들겠지. 그런 마음 있잖아요. 그런 것이 저는 연대를 느끼게 하는 가장 좋은 경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황필규: 이것도 결국 시간과 노력, 비용의 문제가 결부되기는 하는데요. 그래도 요즘은 비용 없이도 온라인으로 논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서 네트워킹이 더 수월해진 면도 있습니다. 제가 관여했던 것 중 대표적인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난민 관련된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단체들도 100여 개 이상, 개인 전문가들 포함하면 회원이 3, 400 단체 플러스 개인 정도가 되는 기관인데요. 어떻게 보면 민간 쪽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난민 지원 법률가, 활동가 포함해서 메인 플레이어들이 거의 다 들어와 있는 네트워크이고, 거의 10년이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저희는 한창 난민법을 만들고자 할 때였고 일본은 그 전부터 논의가 있어서 일본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거기에 훌륭한 전문가들이 많이 있어서 내용적으로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의외로 다른 나라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난민법이 통과가 되었어요. 일본은 논의는 우리보다 먼저 시작은 했는데, 한국이 난민법이 먼저 통과되어서 그 이후에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통과될 수 있는지 문의하려고 전략회의에 저희를 부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본 가서 자문을 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대만에도 난민법 관련 자문을 해드리기도 했고요. 이런 식으로 굉장히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고받고 논의하는 구조가 얼마든지 가능하고 실제 그런 것들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단지 정보나 지식 차원을 떠나서, 연대하고 힘을 합치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고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협력을 하면 할수록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일본 법제를 한국이 베꼈고 어느 시점에 가면 어떤 부분은 한국이 일본 것보다 훨씬 더 앞서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일본법이 좀 변했는데 한국은 옛날 일본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전자의 예는 이주노동자 관련해서 일본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한국은 사실상 폐지되는 수순을 밟아서 더 나아간 면이 있다면, 감염법 격리 관련해서는 우리가 일본 것을 예전에 베꼈는데 일본은 그래도 절차적인 보장이나 이런 부분이 들어갔는데 한국은 전혀 아니고요. 이러면서 양국에 관련 판례는 쌓여 있고. 그래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제가 작년에 일본에 이틀을 갔었는데요. 오전에는 기업과 인권 관련해서 일본과 한국 기업들의 인권 침해 관련 논의를 하고, 오후에는 이주 아동 관련해서 일하는 일본 변호사님들에게 자문을 하러 갔는데 논의를 하다 보니 한국이 더 배울 것이 많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희망법이나 공감 같은 단체가 일본에는 없는데, 그런 활동을 꿈꾸는 일본 변호사 스무 명 정도가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지고 다음 날은 난민 관련해서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난민 관련법은 우리가 먼저 만들었지만 사실 인프라나 구체적인 지점, 통역이나 이의절차 등을 들어가면 일본이 더 나은 면도 많거든요. 아무튼 이틀인데도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물론 그 동안에 네트워킹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요. 그리고 사실은 각각의 부분 모임에서 조금씩 십시일반해서 저의 비행기 값과 숙식비를 대주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식의 네트워크가 가능할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동화: 사실 저는 국제연대에 대해서 아예 대놓고 활동가였기 때문에 경험은 되게 많아요. 아까도 잠깐 말씀 드렸지만 네팔, 미얀마, 필리핀, 팔레스타인, 시리아. 가짓수는 되게 많고, 제가 있던 민변이라는 곳이 가진 특성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요. 국제연대 활동 중 저에게 영감을 주었던 활동은, 한국 내 버마 활동가들입니다. 그 분들이 오랫동안 계시면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매주 점심에 시위를 하셨어요. 민주화 운동을 하신 거죠, 군부 독재가 오래 되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 저희 단체와 한국의 네트워크가 꾸려져서 조우했죠. 함께 나가서 집회도 하고. 아까도 잠깐 말씀 드렸지만 2008년도에 샤프란 혁명 운동이라는 것이 있어서 승려들을 중심으로 군부 정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냈었거든요. 바로 총 맞아 죽을 만큼의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 단체는 거기에 대해 연대 차원에서 기자회견도 개최하고 매주 개최되는 집회에도 참여해서 그들과 함께 만나서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그 여파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미얀마가 군부 독재에서 민간으로 이양이 되고, 당시 NLD에서 원해 마지않던 아웅산 수지 여사께서 지금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하고 계시지만, 저 같이 로힝야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고 정말 큰 잘못을 하고 계시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거든요. 아까 류은숙 선배가 말한 것과 비슷한 상황인데.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들은 저에게 큰 경험이었고 현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큰 영감, 아니죠. 사실은 큰 영감이라기보다 어마어마한 자극이고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류민희: 국제 인권 메커니즘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정부의 이행을 이끌어내는 일인데요. 규범을 현실화 하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운 것이. 참 희한한 답변을 듣기도 하고 인권 매커니즘 자체에 대해서 국내에서의 공격도 있고. 제 생각에는 한국 정부가 인권 관련 권고를 그냥 공자님 말씀 정도로 치부하는 것 아닌가. 좋은 말인데 우린 듣지 않겠다. 여러 신호로 다분히 차별 선동을 조장하는 것이거든요, 한국 정부가. 그러면서 대중에 있어서 약간 불길한 극우 포퓰리즘 징후도 있고.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국내적 이행,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지금 저희가 여기에서 해야 될 일은 무엇인지. 무거운 질문이기는 하지만 지혜를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류은숙: 일단 양과 질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일정 정도의 양이 쌓여야 질적으로도 향상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국제 인권 규범과 관련된 운동이 그만큼 양이 쌓여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굉장히 소수가 해왔던 것인데, 양질의 동시 발전이 있으려면 이게 더 많이 퍼지고 많아져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국제 연수를 가보면 대부분 국제 인권 규범을 많이 안다고 하는 곳들은 교육 기관에서 일단 국제 인권 규범을 필수적으로 가르치거든요. 선택 과목이 아닌 필수 과목, 특히 법조인들. 사회단체 연수, 인턴 등 많은 인권 단체들에서 연습을 하면서 성명성을 쓰더라도 반드시 국제 인권 규범이 원용 되도록 해서 끊임없이 훈련되는 시스템이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은 그런 것을 하라고 로스쿨을 만들었지만 변호사 시험에 안 나온다는 이유로 이런 부분들을 굉장히 공부를 안 한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충분히 많은 교육기관에서 국제 인권 규범이 양적으로 많이 공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직 많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맨날 그 자리이면 죽는 것과 똑같거든요. 질의 문제는 솔직히 많이 노력을 해 오셨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이 활용하면 질의 문제는 별로 걱정이 없을 것 같고요.

비슷하게 혐오의 선동.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제일 나쁜 것이 선동이잖아요. 오히려 정부 기관이 나서서 그냥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용인이나 방조 수준이 아니라 나서서 선동하는 경우도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럴수록 적대시하거나 악마 만들기 보다는… 왜냐하면 우리도 감정이 있으니까 밉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명확한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아요. 누구를 똑같이 악마 만들기를 해서 그런 선동이나 반인권적인 혐오를 없앨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닌 것 같고, 그럴수록 좋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서 보여줘야 한다. 어떤 인권도 저절로 되는 법이 없잖아요. 반드시 중간의 장치, 조정 기제나 이런 것이 있어야지 막 하던 사람들도 그 조정 기제를 거치지 않고서는 사회생활이 힘들면 그것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것들을 더 많이 만들려고 하는 노력. 우리가 안전하게 걸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만약 길거리에서 신호등을 보지 않으면 안전하게 걸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될지 잘 모를 것이거든요. 우리는 굉장히 신호등에 익숙하잖아요. 그래서 인권 운동이나 관련 법조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어떤 신호등이 동료,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그런 것들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지, 지금의 혐오나 이런 것이 힘들다고 해서 악마 만들기에 우리가 비슷한 류의 선동의 예만 너무 많이 공유하는 것도 힘이 빠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권운동이 그런 것에 맞서 싸우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그만큼 다른 것을 보여주기. display 한다고 하잖아요. 다른 방식, 다른 삶을 보여주기도 충분히 노력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황필규: 개인적으로는 올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이해서 이 시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위의 여러 분들로부터 의견을 들었어요. 몇몇 분들은 국제 인권 기준 혹은 국제 인권 조약이 국내법적으로 효력을 가진다고 하였을 때 정확히 헌법재판소나 법원에서 어떻게 어느 정도 활용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정리된 입장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법원과 국회 쪽에서 어떤 식으로든 실질적으로 국제인권법을 다루어볼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있고요. 일단 명확한 것은 국제인권법은 법률이고 재판에서 적용되어야 할 재판 규범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모르거나 그것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법관을 위한 실무 편람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으니 그런 것에 대해 제안도 한 번 드렸습니다. 국회 같은 경우도 전체 입법 프로세스에서 추상적인 이야기는 할 수도 있죠. 어떤 것이 필요하고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는 그동안 안 되어 온 것이 아닌데. 구체적인 입법 프로세스에서 어느 단계에서 국제 인권법이 검토의 기준이 된다든지 이런 것에 대한 고민들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고, 그 작업을 꼭 내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관심 있는 분들은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고. 저는 최근의 난민 문제도 그렇지만, 이주민 문제와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 되면서 저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전혀 생각이 달랐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거든요. 국제 기준에 의하면 출입국과 관련된 부분과 선거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특히 한국처럼 경제력이 있는 국가의 경우에는 이주민과 국민의 권리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인권 조약상 너무나 명확한데, 그것을 국민과 이주민을 나누고… 국민과 이주민의 기준을 나누는 것도 깊이 있는 논거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고 독일법을 그대로 따와서, 집회 결사의 자유도 독일법에서 국민의 권리로 되어 있으니까 국민은 권리가 있고 외국인은 권리가 없다든지.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도 통역하려면 돈 드니까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도 국민을 권리의 주체로 둔다든지 이런 것들이 계속 눈에 띄는데. 그런데 제가 존경했던 변호사님, 학자 분들도 ‘잘못했다간 국민도 권리를 못 얻는다.’ 이런 논거를 대시면서 구별하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국제 기준을 같이 소리 높여 외쳤던 분들조차도 특정 이슈에 가서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 있었고. 그런 면에서 원래 인권이 의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길이기 때문에(웃음) 항상 의욕이 넘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동화: 저는 디테일한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행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실 디테일인 것 같거든요. 이 디테일은 그 동안의 방법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하기 위한 우리의 전력투구를 소위 보고서 작성, 제네바에서의 로비, 돌아와서의 기자회견까지로 봤다면 이제는 그 방법에서 떠나는 것도 필요하다. 차라리 그 공력의 절반을 떼어서 정치권의 입법 상황에서 투여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요. 의외로 생각보다 많은 행정부, 입법부에서 절차와 제도에 대한 무지가 많거든요. 그리고 한 번 신설된 제도와 절차, 법 같은 경우에는 그 자체가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에 어리바리 할 때 확 하는 그런 방법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동안 정부, 행정부, 노동부, 여성부하고만 싸우다 보니까 이 사람들은 매일 똑같거든요. 위에서 시켰다, 위에서 정해진 일이다 등 너무 소모적인 순간도 많았고. 어느 순간엔가 그쪽의 로비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믿고 있는 국회의원이나 비례대표, 어찌 보면 확장성이 있는 틈을 찾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플랫폼이 있더라고요. 유엔에서 나오는 권고 이행을 위해서 정부는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단순히 유엔 기구의 권고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아요. 그래서 각 개별 인권 사안들에 대해서 유엔을 포함해서 많은 플랫폼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민변 변호사 세 명이 기소되었을 때, 저희는 단순히 유엔의 기구만 활용한 것이 아니고 전 세계 다양한 인권 변호사 그룹, 세계 변호사 그룹, 다양한 플랫폼들을 연구했거든요.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들을 소위 집적해 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에 대한 활용을 이행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누구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토론, 기자회견 등을 계속 쌓아나가는.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정부와의 관계뿐 아니고, 정치권에서도 유리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정치권이 눈치를 보는 게 있는 것 같거든요. 그 틈과 타이밍, 우리의 세력들을 다 조화롭게 또는 최선을 다해서 하는 방법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여전히 최근 상태를 보며 느꼈던 것은 우리에게는 총론이 되게 빈곤하다. 우리는 되게 전문가이고 이만큼의 절차적 제도를 살아가고 있는 민주시민이라고 보여주었지만 우리 내에 들어가 있었던 다양한 이해관계 사이에서의 모습들은 인권적이지는 않더라.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에 대한 부분들은 생각보다 얕더라 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서 교육에 대한 부분들도 이행과는 무관하게 저변이 쌓여야 하고요. 요즘 되게 많이 느끼는 것이에요.

 

류민희: 감사합니다. 시간이 더 가기 전에 플로어 질문을 모아서 받겠습니다.

 

질문1: 안녕하세요.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동화 활동가님, 류민희 변호사님, 황필규 변호사님, 제네바 자주 다녀오신 분들께서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첫 번째는 번역이나 통역 관련하여 아쉬웠던 것은, 과거에 보고서 심의를 할 때 UN TV 할 때 Original과 English 두 가지로, English 하면 영어 통역까지 모두 영어로만 방송이 되고, Original로 하면 한국 정부 대표단에서 한국어로 발언한 것을 그대로 들리지만 위원들이 권고할 때는 프랑스가 되었든 영어가 되었든 스페인어가 되었든 다 원어로만 들리기 때문에, 한국어 채널도 제네바 가면 분명히 있는데 UN web TV에서 아예 한국어 통역까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사회권과 올해 여성차별철폐협약 때 한국어 채널도 개방이 되었더라고요. 혹시 NGO, 시민사회단체에서 요구나 로비를 하셔서 이루어진 성과인지. 개인적으로 UPR이나 이런 곳에서도 한국어 채널이 있는데 확보하면 일반 국민들도 아예 완전 한국어로 시청할 수 있게끔 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하였고요. 두 번째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개인 진정을 해서 위반 결정이 났을 때 결정문을 법무부 인권정책과에서 우리말로 번역을 해서 홈페이지나 이런 곳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도 게재하더라고요. 그런데 예를 들어 보고서 심의 최종 견해라든지 UPR 권고 같은 것은 보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분들께서 힘들게 비공식 번역본을 만들어서 공유하시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들을 공식 정부 홈페이지에 쉽게 찾을 수 있게 올리면 좋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국제 인권 메커니즘 활용의 각론에 대해 문의 드릴 것이 있는데요. 생뚱맞은 질문일 수 있는데, 국정 농단의 비선실세, 작년 탄핵 당한 전직 대통령, 여러 가지 자신의 교도소, 구치소의 처우 문제라든지 면회 제한이나 구속 연장 등에 불만을 가지고 유엔 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하겠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실제 활용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도에 따르면 유엔 자의적 구금 진정을 했다고 하는데요. 보통 사회적 약자, 소수자분들이 유엔 인권 개인 진정 메커니즘을 활용해왔는데 그들이 유엔 인권 메커니즘을 활용을 하니, 과거에는 거의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유엔 메커니즘 활용한다는 보도가 많이 되었던데 그렇게 활용되는 것, 보도하는 것 자체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지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류민희: 첫 번째 조약 기구 통역 채널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제네바를 간 분들이 문제제기를 꾸준히 했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의 인과 관계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제는 한국어 통역을 그대로 옮겨서 저희가 국내 이행을 위한 운동을 할 때도 잘 쓰고 있는 것이, 이제 한국어로 육성이 나오니 그것을 저희가 웹 캐스트를 그대로 아카이빙을 따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채널에서 활용을 하거든요. 그럴 때는 한국말이 그대로 들리기 때문에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관보에 게재되고도 있지만 정부 번역본이 안 되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최종 결의도 요즘은 다 부처에서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황필규: 참 그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니, 쉬운 문제인데 안 하고 있는 것이죠. 예전부터 계속 문제제기가 있었고 말씀하신 관보 게재는 필요가 있는 것 같고요. 의견을 강력하게 제기를 해서 지금 개인 진정 사건 관보로 오르게 된 것은 당시 국가인권위 결정이 있고 그것을 법무부가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관보에 게재되기 시작한 것인데요. 사실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개인 사건에 대해서 관보에 올리는데 전체적인 국가에 대한 권고가 관보에 안 올라가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요. 그리고 번역이 결국 조약 기구 같은 경우 되기는 하는데 관보가 아니더라도 어딘가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면서… 후속 보고서 제출 될 경우가 대부분인데 후속 보고서에 대해서 거의 안 되는 건 분명하고요. 정당한 문제제기이고요. 저희도 계속 해왔던 것인데 어떨 때는 당당하게 돈이 없어서 번역을 못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계속 문제제기가 되어야 할 부분인 것 같고요. 세 번째 문제의 경우는, 그 사람이 누구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권 침해가 있었느냐. 만약 진짜 영장 제도를 무시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체포했다고 하면 전 당연히 진정 되어야 하고 인권단체에서 문제제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장 절차를 전혀 지키지 않고 했다면. 그런데 이번 진정 사안 같은 경우는, 잘은 모르지만 국제 기준에 비추어보았을 때 인권침해 사안인지는 잘 모르겠고요. 진정이 접수된 것은 맞고 아마 그 이후 정부에 답변을 요청하고 받았는지는 제가 확인을 못 해 보았습니다.

 

질문2: 안녕하세요. 로스쿨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황필규 변호사님이 청와대 앞에서 난민 네트워크 분들이랑 기자회견 하시는 영상을 보았는데 너무 좋았고. 그런데 이런 영상을 본 사람들이 굉장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난민 반대 청원이 50만 명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이런 영상을 보았다면 그 청원을 철회할 사람들도 되게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난민인권센터의 기고문 같은 것도 굉장히 좋고. 그런데 류은숙 활동가 선생님이 어떤 신호등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고. 누군가 예를 들어 법무부를 악마 만드는 것은 힘이 빠질 수 있다, 그렇게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당위에 대해서 어떻게 이 50만 명의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계실 것 같아요.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황필규: 저는 사실 문제가 있습니다. 영상을 칭찬해주셨지만 굉장히 공격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고. 제가 만약 혼자 활동하고 있으면 그렇게 공격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좀 더 완화된 언어로 이야기하고 대화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것은 역할 분담의 문제인 것 같고요.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해도 못 알아들으면 좀 더 혼내는 것이 맞는 것 같고 그 역할을 제가 하고 있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범적인 인터뷰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전체적으로 다른 분들의 인터뷰를 종합해보았을 때 의미를 가진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포지셔닝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저는 당장의 혐오냐 아니냐 문제보다는 좀 더 차분한 대화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단지 인권이냐 반인권이냐,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닌 양상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다양한 층위들이 있고, 심지어는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이런 데서도 다루려고 했다가 공부가 더 필요한 것 같다고 프로그램을 엎고.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을 하고 있다. 그게 저는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좀 더 고려되어야 할 사안들이 있는 것이고. 그런데 적어도 선입견과 편견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번 제주 포럼에 오신 동티모르 대통령의 경우도 본인이 25년 간 난민이었고,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박해 하에서 25년을 망명 생활을 한 것이거든요.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와의 평화 협상을 통해서 사실상 독립을 했고. 이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이죠. 서구만 하더라도 결국 크리스천을 내세운 폭력 같은 것들이 난무했고 그것을 피해간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 미국 이주를 만들었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슬람에 대해서도 어찌 보면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한데 이분이 하시는 말씀은 ‘극단주의자들과 일반적인 무슬림은 당연히 구별되어야 하고, 오히려 서구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공격하는 극우세력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참 한국의 맥락에 맞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한국 제주 포럼에서 그 말씀은 안 하고 가신 것이 안타까운데요. 그래서 저는… 모르겠어요.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불편함이 있을 수는 있는데 거부감과 불편함이 어떻게 보면 더 소중한 가치들을 이기게 해서는 안 되지 않나. 저는 기본적으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인 것 같다. 그 두려움만 극복이 되면 무언가 평가할 수 있겠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데, 두려움에서 출발해서 두려움에서 그치면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논의를 하더라도 결국 그 논의는 생산적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팩트 부분도 당연히 검증된 팩트를 보아야 할 것 같고 인식에 있어서도 순간적인 것이나, 아니면 지나가는데 휘파람을 불었다든지 이런 것을 큰 그림을 그리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판단을 한다든지 이런 상황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동화: 저희는 난민 활동을 하니까 현재 상태를 보면서 많이 열이 받고요. 가장 열 받는 부분들은 주변의 친구들과 제가 많이 만났던 지인들이 대상자여서 그들에 대한 공격 자체가 저는 불편한 것이죠. 이 사람들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나. 상상도 못 할 공포를 피해서 넘어왔을 것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공격을 받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제가 글을 하나 썼는데, ‘우리에게 이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차별할 권리 따위는 없다’고 썼더니 댓글이 1,200개가 달려서 (좌중 웃음) 우리 집 가족들이 모두 장수하게 생겼어요(웃음). 저는 사실은 이것이 민낯이고, 저는 이 50만 명 전체가 절대 단단해서 변화하지 않을 사람도 있는 반면에 아직까지는 생각이 말랑말랑하다고 할까요. 일정 정도 여러 가지 분위기라든지, 혐오를 만드는 장치들이 있잖아요. 범죄자, 강간 같이 무시무시한 것들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고 보거든요. 사람을 보기 전에 앞에 쳐져 있는 장막들로서 생각하는 것.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들인 것이죠. 이 반응들이 사실 저도 예상을 못 했다가 느끼는 것이고. 사실 이 반응들이 이쪽으로 갈지 저쪽으로 갈지는 영향에 따라 바뀔 것 같아요.

저는 한국의 정치인, 종교인들이 나섰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공익을 위해서 시민의 하인이 되던 아니면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설교를 하든 이 이슈만큼은 자기가 가진 가치관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저는 박원순 씨 빼고는 잘 못 들었어요. 이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요. 활동가들 입장에서 고민 많이 했어요. 활동가들은 정치적 방법을 써야 하나? 아니면 말랑말랑하게 이 사람들과 끈질기게 토론을 해야 되나? 여러 가지 전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앞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리고 이 뒤에서 소위 식자층, 전문가층, 정치인들,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이 있는 역할에서 한 마디씩 본인이 가진 가치관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하면, 어쨌든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너무나 단단히 바뀌어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나는 죽어도 안 돼 라는 사람은 포기한다 하더라도 혐오가 만들어진 사회적 분위기에서 소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영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관계, 언론의 역할을 다 차치하고. 그래서 저는 일단 이것이 한국 사회의 민낯이고 여기에서의 우리의 어떤 대응들이 사회의 분위기를 계속 강화해갈지, 아니면 예상과는 달리 우리도 예전 선조들이 도움 받았듯이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사실 우리의 몫이기도 하고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류민희: 인권 활동가들도 고민하는 주제인데 두 분 말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국제 인권 메커니즘 들으러 오신 분들께 마음가짐과 권하고 싶은 문헌, 책이 있으면 포함해서 마무리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동화: 저는 연차도 짧고요 사실 생각도 그렇게 깊이 있지 않아서. 저도 책을 안 보거든요(웃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류은숙 선배의 책을 권해야 되나. 그런데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없으면 내가 정말로 권해요. 류은숙 선배의 책은 정말로 권하고요. 그리고 제가 권하는 책은, <팔레스타인>이라는 만화책이 있어요. 되게 쉽고 붙잡으면 15분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하지만 거기에서는 난민, 팔레스타인, 이슬람 등에 대해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 되실 때, 답답하고 힘드실 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황필규: 제가 내성적인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시니컬한 말을 많이 합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요. 그래서 국제인권에 관심이 있다는 분들에게 제가 늘 하는 이야기가 ‘국제에 관심 있냐 인권에 관심 있냐’고 물어봅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고 국제인권 일을 계속 하고 계신 분도 계시고요. 그리고 언젠가 어떤 분이 비교법 연구를 하신다고 찾아오셔서 자문을 구하신다고 하셔서 제가 ‘비교법 연구는 기본적으로 사기인데 얼마나 사기를 안 치실 계획이십니까’라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단순 비교가 아니라 배경부터 정말 연구를 많이 하셔서 저도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분에게 찍혔지만 그분께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어쨌든 감수성이나 이런 부분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콘텐츠로 들어가면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들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리고 국제인권이라는 것이 어쨌거나 별도의 전문성과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과도하게 신비화 되거나 과도하게 외면되는 간극을 점점 줄여가는 역할을 앞으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책을 거의 안 읽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책 중에서는 권해드릴 책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편법이지만 생각한 것이, 공익인권법 실무학교 강의 내용을 복습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좌중 웃음) 이틀 동안 무언가 배워놓은 것 같은데 던져놓으면 사실 다 까먹잖아요. 그래서 혹시 그 중에서 안 보신 글이 있으면 꼭 복습을 하시고 혹시 안 하셨으면 중간에 끼워져 있는 후원 신청서도 다시 읽어보시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류은숙: 배움과 실천에 있어서 가장 문제되는 태도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할 수 있어 이런 말 하는 사람입니다. 끝내 아무것도 안 하고 안 하거든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해야 되어요. 실제로 해보아야 되어요. 그리고 하다 보면 남들이 볼 때 우습게보고, 그까짓 것으로 세상이 바뀌겠냐. 관망자, 논평가의 태도가 아니라 자기가 직접 뛰어드는 태도여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어요. 당장 안 바뀌거든요. 당장 안 바뀌지만 계속 걸으면서 꿈꾸는 거예요. 정지 상태에서 꿈꾸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꼼지락꼼지락 계속 움직이면서 꾸는 꿈이 저는 진짜 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뭐라도 꼼지락 거려보자는 것이고요. 제가 권하고 싶은 책은, 물론 제 책을 읽어주시면 감사하지만(웃음) 법학 공부하시는 분에게는 제가 늘 권하는 것이 건국대 법학대학원의 이재승 교수님이 쓰신 <국가 범죄>를 꼭 권해요. 정치사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권 피해를 유발하고 생채기를 남기는가. 그래서 과거가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느끼게 해주고. 특히 이 책에 나오는 문헌 중에는 유엔의 인권피해자 권리구제 원칙이 중심이거든요, 이 책이. 이 원칙은 새기고 새겨도 또 새겨야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세월호 같은 일이 있을 때 우리가 무슨 세금으로 저걸 해, 그런 말을 하잖아요. 피해자 권리 구제의 관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간단한 원칙이지만 이런 것으로 우리 사법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되게 도전이 되는 두꺼운 책이에요. 이상입니다.

 

류민희: 감사합니다. 두 시간 되는 시간 동안 국제 인권 관련해서 상세하게 안내 드리려고 했는데요. 오늘 들으셨던 것, 낯설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해 두렵지 않다, 내가 기회가 되면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셨으면 좋겠고 오늘 말씀하신 것들을 기회가 되면 꼭 해보세요. 그러면 세 분께 박수 드리며 공개좌담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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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