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월 29, 2013

인권을 외치다, 사람인 까닭에… –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활동가

인권을 외치다, 사람인 까닭에… –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활동가    희망법, 처음 시작할 때 참 막막했습니다. 6명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무실을 마련할 수는 있을지, 과연 제대로 시작은 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불안했습니다. 중국집, 카페, 세미나실 등을 전전하면서 사무실 개소를 준비하기 2개월여, 그때 인권연구소 창(‘창’) 한켠에 저희가 임시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분이 류은숙선배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정식 사무실로 이사하는 날 회의용 책상, 컵, 포스트잇, 스테이플러 등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챙겨주셨고, 사무실에 음식을 가져다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희망법 성원들이 고생한다며 몸보신을 시켜주신다고 창에 초대해주셨습니다.  이날 인터뷰는 선배가 몇시간 동안 장보고 요리해서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인권운동을 하게 된 계기, 희망법에 대한 생각 등을 이야기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사진 1. 2012년 희망법 창립행사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류은숙 선배의 모습>     데모를 싫어하던 1학년생에서 준비된 운동권으로     희망법: 선배님이 인권운동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궁금한데요.   류은숙: 처음에 제가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인권’운동이란 말도 매우 생소할 때였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사실 대학생들이 학생운동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86년도 건대사태라고 아시죠? 그때 처음 집회라는 걸 나가봤어요. 그때 학생들이 수백 명 잡혀갔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 석방하라고 철야시위를 했었죠. 근데 철야시위가 너무 힘들잖아요. 밤새도록 계속 앉아서 구호외치고…그래서 새벽 5시쯤 마지막 구호 외칠 때 ‘내가 이 짓을 다시 하나봐라’하면서 나왔어요. 참여는 했지만 너무 지겹고 힘든거예요. 그랬는데 그 이후도 계속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요. 김세진, 이재호 서울대 학생의 분신도 있었고…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었던 세상과 뭔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안게 됐죠. 그러다가 저는 다른 고민 때문에...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