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2018 희망법 하계실무수습 후기

 

희망을만드는법, 희망을 배우는 법

김광우(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빨리 로스쿨을 졸업해서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한 달이었습니다.

 

희망법에서 수습기간을 보내며, 세상에는 내가 미처 인식조차 못한 문제들이 산재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화관 소송 과제를 하며 시각 및 청각장애인에게는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과 관련된 교육을 들으며 성소수자 관련 법인의 경우 법인설립허가를 받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싸움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장애인 문화권’이라는 주제로 열린 서울시 인권포럼에서는 당연히 문화 수용자로서의 장애인 문화권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문화 주체로서의 장애인을 의미한다는 사실 역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동성결혼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봤던 것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을 제도화하기 위하여 주로 노력하였던 활동가이자 변호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으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류민희 변호사님은 ‘활동가로 일하며,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경우의 기쁨’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셨습니다. 7월 25일 반올림 농성 마침 문화제를 갔을 때, 류민희 변호사님의 이야기와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농성장 3년, 반올림 투쟁이 시작된 지 11년이란 긴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래서 지금의 이런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기쁠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저는 반올림 투쟁에 대해서 방관자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 기쁜 일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공감하기보다는 머리로 이해할 수밖에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달 동안 어깨너머로 본 희망법 여러분들은 모두 다큐멘터리 속 활동가처럼,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빨리 졸업을 해서 희망법 여러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직 산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도 개선의 결과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기쁨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8 희망법 동계 실무수습에 참여한 김광우 씨(왼쪽부터), 이상혁 씨, 이미린 씨, 신하영 씨, 이종민 씨.

 

 

내게는 참 시원했던, 희망법과 함께 한 올해 여름

 

신하영(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습니다. 태풍도 맥을 추지 못하고 비껴갈 정도였다는 뉴스도 들렸습니다. 그럼에도, 희망법과 함께했던 올해 여름은 제게 참 시원했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법학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운 좋게 로스쿨에 입학했던 탓에, 지난 일 년 반의 로스쿨 생활을 방황하듯 보냈습니다. 몰아치는 시험 일정에 쫓기며 단순히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답지를 채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에 의욕을 잃기도 했고,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너무나 막연하게 느껴져 답답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익 분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지원한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많은 고민들을 해소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실무수습을 하며 희망법에서 실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의 기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멈춘 활자와는 달리 생동하는 기록들은 제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보통의 하루를 위해 투쟁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유일한 이동수단인 택시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쟁점을 찾고 외워둔 판례를 나열하기 위해 쫓기듯 기록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문제를 실효성 있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기록을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법학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막연했던 개념이 명확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동떨어져 있는 줄 알았던 개념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권리를 구제하는데 법학이 얼마나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 달간 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제 맘을 알고 있는 동기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함께 당연하다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어서, 더운 여름 열 낼 일 없이 마음만은 시원한 실무수습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철학이라는 것이 있고, 그 철학을 노 삼아 세상이라는 큰 바다를 저어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멋진 말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희망법에서의 실무수습은 제가 어떤 철학을 노 삼아 변호사로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준, 저만의 노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막연함에서 뚜렷함으로

 

이미린(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전부터 공익 활동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있을 뿐 공익변호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호기심으로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할 수 있기를 고대했습니다. 학기 중 희망법 실무수습 모집 공고가 뜨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준비하고, 고치고 또 고치던 기억이 납니다. 1학년 1학기를 겨우 마치고 하는 실무수습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희망법의 배려심 넘치는 문화 덕분에 무사히 마친 것 같습니다. 희망법 구성원 분들이 항상 실무수습생들을 배려해주시고 무엇이든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하셔서 늘 감사했습니다.

 

실무수습 중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은 희망법 구성원들이 실무수습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모두 모여 서로 처음으로 인사를 하던 날 있었던 일입니다. 지난 봄 사법농단사태가 밝혀졌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 모든 공부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혔지만, 듣던 수업 중 어느 교수님도 그 일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라도 언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희망법에서의 첫인사 날, 서선영 변호사님께서 그 일 때문에 요즘 마음이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제가 올바른 곳을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 뒤 희망법 내부 포럼에서도 관련된 이야기를 다뤄주셔서 마음이 조금 치유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실무수습 막바지에 반올림이 농성을 해제하면서 연 문화제에 다녀온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회사를 잠시 다니다가 법전원에 진학했는데, 퇴사하기 몇 달 전 황유미 님의 이야기를 다룬 <사람냄새> 읽고 퇴사 결심을 굳혔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 안의 삶을 버티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책 덕분에 다른 방식으로 제게 주어진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중재안이 어떻게 이행될지, 책에 없던 결말을 앞으로 함께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의미 깊었습니다.

 

과제나 교육 중 실무수습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본 것도 법전원 생활에서는 겪기 힘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세 개의 과제 중 총 두 개의 과제를 여럿이서 수행했는데, 생각이 깊은 동료 실무수습생들 덕분에 즐거움 이상으로 얻은 것이 많았습니다. 실무수습 중 희망법의 각 활동 분야에 대한 내부교육이 이뤄지는 데다가 실무수습생 각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인권 문제를 인식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희망법 덕분에 활동적인 여름을 보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 퀴어문화축제, 쌍용차 분향소, 법원 등등 이번 실무수습을 통해 처음 가본 곳이 무척 많습니다. 이번 여름이 몹시 더워서 돌아다닐 때 힘들었는데도, 이렇게 후기를 쓰고 있으니 지난 순간순간이 벌써 그립습니다. 희망법 사무실의 떠들썩한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생각하면 열람실과 기숙사를 왕래하는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 조금 두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치열하게 보내어 희망법과, 희망법이 연대하는 많은 분들 곁에 든든하게 설 수 있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훨씬 뚜렷해졌습니다. 또 어딘가에서 희망법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민을 품고 살아가며, 다시금 희망을 만드는 법

 

이상혁(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에 입학한 이후 법학을 공부하며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법을 왜 공부하지?’라는 다소 허무한 질문이었습니다. 당장 조문과 판례를 외우고 답안을 쓰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항상 이 공부를 왜 해나가야 하는지, 나아가 법률가로서 앞으로 살아나갈 소명은 또 어디에 있는 것인지와 관련해 법이라는 세계의 ‘당위’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약자를 위해야 한다는 막연한 대의에도 불구하고 때로 기계적인 중립성과 엄밀성을 취하는 법적 언어는 차라리 차가운 치자(治者)의 언어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에 그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다가온 희망법에서의 실무수습은 품어왔던 일련의 물음에 대해 작지만 단단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교육과 외부일정, 그리고 서면작성 과제로 이루어진 실무수습 프로그램 가운데 어느 하나 흥미롭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없었지만, 막상 실제로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나니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운 점들이 한둘씩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과제서면을 작성하며 어떻게 주어진 사실관계를 법리에 포섭할지, 법조문의 문언을 어떻게 해석할지, 서면의 형식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와 같은 막막함에 부딪혔던 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꼈던 더 큰 어려움은, 우리를 둘러싼 이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 들었던 막막함에 있었습니다.

 

희망법 업무의 성격상 실무수습생들은 실제 공익인권 사건들을 담당하시는 변호사님들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참으로 날 것의 현실들을 듣고 보고 읽어 나가게 됩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례회의에 참석해서 장애인에 대한 정말 말도 안 되는 차별행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인권의 기초 개념부터 소송실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진 강의 도중에 변호사님들께서 실제 담당하셨던 사건의 개요를 전해 듣고, 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를 쓰기 위해 방대한 사건 기록을 읽고 정리하면서, 이 사회가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의 불합리함과 오만함 내지 부정의에 분노감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분노감은 곧 내가 왜 법학을 공부해야 하며, 지금 여기서 희망법의 구성원들, 나아가 우리들이 왜 계속해서 고민하고 싸우며 끈질기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의 단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덜 부끄럽게, 보다 많은 사람들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실무수습 둘째 날, 점심을 먹고 들어와 작은 회의실에 둘러앉아 인사를 나누던 시간, 한 변호사님께서 담담한 목소리로 건네신 말을 잊지 못합니다. “나는 법을 공부하며 즐거운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여러분도 변호사가 된다고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들이 품고 있는 고민을 계속 품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문하는 삶을 사는 법, 그로부터 다시금 희망을 만들어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고, 또 그 시간을 희망법 구성원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저는 지난 4주가 참 행복했습니다. 후일 저 역시 부끄럽지 않은 고민을 품는 법률가가 되어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 뵙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낙관하지 않는 희망’을 만드는 곳

 

이종민(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냅시다.’라는 영화의 대사를 SNS 상태 메시지로 떡하니 게시하고 다녔다. 모순적인 문구 같지만 때로는 맹목적인 낙관이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믿었다. 희망법 실무수습 참여가 확정된 후, 희망법 구성원 분들이 상태 메시지를 알아채면 참 예뻐하시겠다는 친구들의 놀림을 받은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법률가로서의 진로에 도전하는 것을 고민하던 시절, 우연히 만나 뵈었던 희망법 변호사님 한 분의 ‘로스쿨 예찬’은 공익인권변호사라는 꿈에 한 발 더 다가서보자는 결심을 영화처럼 ‘인셉션’ 해주었다. 공익인권변호사들은 거대한 목표를 위해 느리지만 묵직한 걸음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분들로 보였다. 로스쿨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한 번 이상의 실무수습을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로스쿨에 가면 희망법으로 실무수습을 나가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로스쿨생으로 신분이 바뀌고 책을 통해 바라본 법은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와는 동떨어진 것 같았고 항상 정의로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러한 고민에 처음의 마음은 잊히고 공부에 대한 흥미도 잃어가던 중 실무수습이 시작되었다. 희망법은 로스쿨에 진학하리라 결심했던 시기의 의욕을 다시 되찾게 해주었다. 여전히 변호사님들께서는 한 걸음씩 전진하고 계셨다.

 

재판의 결론을 바꾸기 위해, 결론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 안의 문구 하나를 바꾸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논리를 만들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부해야 하는지 짧지만 강렬하게 배울 수 있었다. 주어진 과제는 내가 가진 실력과 경험에 비해 어려웠지만, 법은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책 너머에는 현실과 맞닿은 영역에서 치열하게 행동하고 연구하는 활동가와 법률가가 있다.

 

4주간의 따뜻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더 이상 희망을 맹목적 낙관의 동의어로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법은 언제나 권리 실현의 실제적 수단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법률가의 고민과 노력에 따라 많은 이들의 희망이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지 않고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노력의 결실이 하나씩 드러나는 순간 희망은 더 이상 고문이 아닐 것이다. 반드시 변호사가 되고야 말겠다. 가급적 한 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