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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참여 후기

[실무수습] 희망법 forever

[실무수습 후기] 희망법 forever     왜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하게 되면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왜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하게 되었는가?” 매번 같은 대답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은 이 시대의 인권 문제를 현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고 답했고, 가끔은 공익인권변호사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끔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이끌었던 것은 “즐겁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었습니다. 젊은 변호사들이 공익기금을 발판으로 일궈낸 조직이라는 점, 개인 후원 중심으로 알뜰하게 살림을 꾸러가고 있다는 점, ‘공익인권변호사모임’다운 중점사업들이 점점 추려지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런 마음을 부추겼습니다.     희망법에서의 시간들   첫 출근을 하던 날, 지도관이었던 김동현 변호사도 제게 그 질문을 하였습니다. 왜 희망법에 왔느냐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말입니다. 아마 이것저것 많이 구경하며 배우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희망법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여러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희망법에서의 실무수습 기간은 그러한 제 바람에 꼭 부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최윤아실무수습생이 자신없어 하면서 만든 점심식사. 하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구수한 된장국과 신선한 샐러드.  희망법에서는 매주 구성원들의 일정을 공유해 주고 함께할만한 다양한 활동들을 추천해주었습니다. 각종 회의나 강연회•설명회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장 단계에서부터 상고이유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면들도 작성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부터 작성한 서면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까지 함께 하다 보니 사건을 대하는 자세와 서면 작성 기술도 점점 나아졌습니다. 또한 여러 회의들에 꾸준히 참여하다 보니 처음에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던 제 모습도 조금씩 변해 점차 회의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회의들에 참석하여 토론회 준비부터 후속 작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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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수습]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아아악 이건 말이 안 돼!!!”   희망법의 새로운 사무실, 슬리퍼 한쪽이 수줍게 끼어 있는 현관문을 열면 사람 수의 딱 두 배 정도 되는 신발들이 정겹게 엉켜 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직사각형의 방. 법서는 물론 인권과 관련한 책이나 자료집이 빼곡히 꽂혀있는 책장으로 둘러싸인, 가운데는 커다랗고 너른 책상이 하나 놓여있어 회의용으로도, 점심식사용으로도 유용하게 사용되는 이 공간에서 지난 한 달간 울려 퍼졌던 외침(?)이 하나 있다.   현정, 수연, 지은, 종국. 희망법의 세 번째 법학전문대학원 실무수습생인 우리는 이 정겨운 공간을 한 달 동안 차지하면서 참 많이도 열을 냈다(물론 중의적 의미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적 편견이 전제된 것이 분명한 성별정정 기각결정이나 병역면제 취소처분, 장애인의 시험 응시나 놀이기구 이용 등에 대해 근거 없는 제한을 가하는 차별적인 기업논리, 사전 신고범위를 아주 조금 벗어난 것에 대해 여지없이 집시법 위반과 일반교통방해죄를 들이미는 그 얄팍한 공권력까지. 희망법 실무수습 기간 동안 우리가 만난 사건들은, 그 이야기의 생생함에 비례해 오히려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첫 2주 동안 우리는–특히 나는–곧잘 화를 냈고, 끊임없이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말이 안 됨’을 정확히 어떻게 글로 설명해 낼 것인지, 또한 재판부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법적 근거를 들고 어떤 판례를 인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 분노만으로는 불가능함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치열한 노력들이 계속 있어왔음에도 사회의 차별은 여전히 공고하다는 뼈아픈 현실감각을 되찾자, 나머지 2주 동안은 조금은 차분해진 상태로, 하지만 더욱 열심히 요긴할 근거를 찾고 논리를 구성해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들은 자꾸만 부정하지만 의욕에 앞서 불불거리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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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수습] 장애인권팀과 함께한 실무수습기

장애인권팀과 함께한 실무수습기 #1 희망의 조각을 안고   6월 30일, 첫 출근! 설렘 반 기대 반 들어선 1030호! 익숙한 공간과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회의실에서 4주간 함께 할 실무수습생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공감인권법캠프와 실무학교에서 만났던 이대 로스쿨 5기 송지은! 그리고 다른 실무수습생 두 분은 전남대 로스쿨에서 온 같은 기수이자 같은 조였다(전남대 로스쿨 5기 최현정, 이종국). 두 사람씩 아는 사이인 덕분에 금방 친해져서 돈독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첫 날은 실무수습생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계시는 교육부서장 조혜인 변호사님이 OT를 진행하셨다. 희망법은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기 때문에 구성원들끼리 서로 별칭을 부른다고. 처음엔 괜히 반말하는 것 같고 어색해서 얼버무리기 일쑤였는데, 익숙해지니 변호사님들과 마음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지는 느낌도 들고, 나중에는 편해져서 정말 좋았다.   수연씨는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물어보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엄’이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했는데, 그 순간부터 나는 ‘엄’이 되었다. 팀은 장애 인권팀에 배정되었는데, 담당 변호사님은 김재왕 변호사님이셨다. 김재왕 변호사님께서도 그냥 ‘왕’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하시기에 4주간 ‘왕’을 왕으로 모셨다. 희망법 실무수습 환영회식 장면     #2 왕과의 외부활동   왕이 지도변호사 개별 면담을 하시면서 앞으로 실무수습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을 알려주면 참고하겠다고 하셨는데, 외부활동이 있으면 열심히 따라 다니면서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다. 전적으로 수용하시고 거의 모든 외부활동에 데려가주셔서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신기하게도 실무수습 첫 2주 동안은 뭇 아이돌 부럽지 않은 빡빡한 외부활동 일정이 잡혀서 나의 바람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하겠다. 하루에 외부회의가 3건이나 있는 날도 있었으며, 토론회, 단체와의 연대 등 왕이 소화해야 할 외부 일정이 정말 많았다. 또한 신기했던 점은 단체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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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수습] MTF 트랜스젠더 병역면제취소사건 지원과정 참관기

MTF 트랜스젠더 병역면제취소사건 지원과정 참관기 2014년 7월 23일 오전,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MTF 트랜스젠더 A씨에 대한 병무청의 위법한 병역면제(5급 제2국민역)취소처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문제의 발단 병무청은 올해 5월 A씨에게, 2005년 A씨에 대하여 했던 병역면제처분을 취소하겠다고 예고했다. 올해 초 A씨의 지인을 병역기피혐의로 조사할 때 A씨가 언급되었고, 조사해보았더니 A씨는 2005년 당시 사위행위 즉, 속임수에 의해 병역을 면제 받았다는 것이다. A씨는 병원에서 ‘성 주체성 장애’ 진단을 다시 받아 그 진단서와 본인이 수기로 작성한 여러 장의 진술서, 어머니의 진정서, 지인들의 진술서, 각종 수술확인서를 제출하였지만, 병무청은 6월 끝내 위 처분을 취소하였다. 트랜스젠더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IV(DSM-IV) 상 ‘성 주체성 장애’로 진단된다(2013년 개정된 DSM-V는 ‘성별 위화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징병신체검사규칙은 ‘성 주체성 장애’의 정도에 따라 3급에서 5급까지의 병역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언 상, 의사의 진단이 있으면 병역이 면제되는 5급 처분이 내려져야 한다. 위 규정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병무청은 병역면제처분을 받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단에 더하여 “호르몬 치료와 성형 등으로 여성화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관련글 보기 : [한겨레] 트랜스젠더라고 ‘면제 판정’ 해놓고 병무청, 9년 뒤 다시 ‘군대 가라’) 그녀의 이야기 나는 7월 9일, A씨가 병무청에 제출했던 진술서 등을 읽게 되었다. 성적 지향 및 성별정체성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실무수습 지원서에 쓰기는 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트랜스젠더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몰랐다. A씨가 손으로 쓴 진술서에는 30여 년 동안의 고민과 아픔, 절망과 희망의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진술서에 미처 적히지 못한 이야기들,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만 드러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더 많을 것이다. A씨는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썼다.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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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수습] 희망법을 만나러 ‘가는 길’ 에 읽는 글_”첫 날의 걱정과 떨림을 진정시키기 위한 경험자의 실무수습 안내글”

희망법을 만나러 ‘가는 길’에 읽는 글  –첫 날의 걱정과 떨림을 진정시키기 위한 경험자의 실무수습 안내글 2014년 6월 30일, 제가 희망법에서 처음 실무수습을 시작하게 된 날입니다. 실무수습을 모두 마치고 나서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처음 출근할 때의 긴장되었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한 것 같습니다. 처음 출근할 때에는 새롭고 특별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과연 내가 4주 동안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욱 컸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글을 읽게 되시는 분들 또한 저와 같이 희망법 실무수습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글재주가 없는 제가 어떻게 후기를 쓸지 고민하다가, 앞으로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하게 될 분들께서 참고하실 수 있도록 제가 실무수습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두서없이 써내려가고자 합니다.  사무실에서는 신발을 벗고 일해요!  첫 출근부터 혹여 늦을까 싶어 일찍 나오는 바람에, 희망법 사무실에는 출근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처음 사무실을 접했을 때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무실에 들어갈 때 일반가정집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법률사무소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웃음) 신발을 벗으며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약간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이 때 부터 희망법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배려심 깊은 희망법 식구들!  출근 첫 날, 지도변호사님께 실무수습 프로그램 설명을 받았습니다. 지도변호사님께서는 실무수습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 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안내해주시면서도,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어조가 아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지도변호사님 뿐 아니라, 다른 희망법 식구들도 실무수습 중에 혹시 부족한 점이나, 부탁할 점은 없는 지 자주 여쭈어보십니다. 실무수습생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주셨던 희망법 식구들, 덕분에 실무수습 기간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제가 많아 심심할 틈이 없어요!  희망법은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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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의 기억

‘희망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의 기억   영화 변호인에서는 두 종류의 변호사가 나온다. 유, 무죄를 다투는 변호사와 형량을 다투는 변호사. 영화에서는 후자의 변호사가 부패하고 불의한 법조계의 일부처럼 묘사되지만, 무엇이 그 당시, 그 피고인에게 더 유리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무엇이 구체적 정의이고 부패인지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나에게 공익변호사의 길이 어떤 길인가에 대한 고민은 앞의 불확실과 연결되어있다. 더 이상 나열하기조차 민망한 무수한 비극을 만들어내는 체계 속에서 나는 비극중 하나인 당사자와 거기서 생존해야하는 나를 위해 어디까지 타협해야 하고 어디까지 거부해야하는가. 나에게 희망법은 이와 비슷한 고민들 속에 실천이 있는 장소였고 이곳에서의 다양한 경험들 그 자체로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1. 재심 기록과 재판 방청   개별 과제와 재판방청에서는 재심기록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무실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재심기록을 본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과거사 문제를 사법적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재판은 생애 처음으로 방청한 재판임과 동시에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재판이었다. 장시간 동안 지속된 프레젠테이션에서 검찰 측은 지루했고 피고 측은 통쾌했다.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피고인의 진술을 듣는 동안에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이 묘하게 뒤섞였다.   2. 다양한 방법들 꼭 재판이 아니더라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볼 수 있었다. 희망법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주관한 ‘수능시험 편의제공 개선을 위한 시각장애학생 증언대회’ 는 직접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행사였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직접 수능문제를 푸는 영상을 보면서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의 제공의 필요를 즉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영상을 뚝딱 만들어내는 변호사님들의 실력에 감탄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 문제를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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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메이드 점심식사의 추억 – 희망법 실무수습기

아직도 7월 1일, 처음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의 701호 문을 두드리던 때가 생생하다.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등줄기에 땀을 줄줄 흘리며 들어갔다. 실무수습 한다고 머리도 새로 자르고 그 전날 옷도 뭘 입어야 하나 엄청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들어가자 문에서 제일 가까운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 곳에서 같이 실무수습을 한 진아를 처음 만났다. 지금 와서 하는 고백인데, 사실 처음에 진아가 변호사님 혹은 사무실 직원분인줄 알았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에 웬 내 또래의 남자가 지도를 기웃기웃 보며 앞서 들어가는 것을 보아서 저 남자가 같이 일하게 될 실무수습생인가보다 라고 머릿속으로 지레짐작해서인 것 같다.   진아랑 통성명을 하고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 있자 실무수습 신청 등의 메일을 주고받았던 조혜인 변호사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일정표를 나누어 주시며 앞으로의 교육 일정과 재판이나 토론회 등 사무실 밖에서 할 일정을 소개해주셨다. 그리고는 지도변호사님을 배정해주셨고 나는 한가람 변호사님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도변호사와의 개별 면담 시간이 있었다. 한가람 변호사님은 일정표에 특별히 변호사님이 하시는 다른 일정이 있거나 저녁 일정이 있는 것을 추가로 더 알려주시고는 관심이 있으면 참석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차나 한 잔 하러 가자며 가까운 카페로 데리고 가 주셨다. 긴장을 풀어주시기 위함이었는지 고양이 자랑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수다를 조금 떨다가 그 날을 바로 퇴근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이때도 얼마나 얼음처럼 뻣뻣했는지 모른다. 여기까지가 희망법 첫 날의 기억이다.  그로부터 4주의 실무수습기간이 다 지난 지금에 와서 이날을 회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4주의 기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갔고 그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서면도 종류별로 써보고, 정말 꼼꼼한 피드백에 감동(+충격)도 받았다. 장애,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차별금지법, 기업과 인권, 집시법까지 각종 교육도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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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의 긴 막대 – 희망법 실무수습기

나는 공익이 아주 특별한 분야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남을 위한 변호사와 나를 위한 변호사가 구분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 되어서 그로인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법에서 만난 구성원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너무 착해서 자신의 이익과 기쁨을 다 버리고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영역 안에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많이 내어주는 사람.    법학전문대학원에 오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몇 가지의 선택항이 주어진다. 첫 번째로는 판사나 검사를 하고 싶은가 아니면 변호사를 하고 싶은가를 묻고, 변호사를 하고 싶다면 법무법인에 가고 싶은지 일반회사의 사내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혹은 공공기관 등에 가고 싶은지를 묻는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 어떤 것도 선뜻 원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꼬집어 말하기도 어려운 막막함의 가운데에서 한가람 변호사님의 강연을 들었고 희망법을 알게 되었다.  학교공부가 답답할 때 마다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 희망법을 보았다. 여기저기 특강과 캠프를 통해서 희망법에서 나온 강연을 들었다. 트위터로 소식을 듣고, 간간히 언론에 나온 희망법을 만났다. 또한 내가 로스쿨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먼저 희망법을 아느냐고 물어왔다. 이렇게 밀려오는 희망법이라니, 저곳에서 실무수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희망법에서 공고가 뜨지 않을까 하며 기다린 지 일년 정도, 기말고사를 보던 마지막 날 급하게 희망법의 실무수습 공고를 보았고, 부끄러운 지원서를 낸 이틀 후 출근 이메일이 왔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두 명의 실무수습생 중 한명이 되었다.  어떤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첫 번째로 나는 이분들이 가지는 전문성과 그를 위한 노력에 가장 놀랐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까 큰 회사보다는 조금 편안하게 일하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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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 실무수습 후기 – 희망법에서의 한 달

희망법에서의 한 달  – 환대 속에서 공익인권법 활동 염탐하기 희망법에 문 두드리기 5월 한 달간 ‘실무수습’이라는 명목 하에 희망법을 왔다갔다 했다. 사법연수원에서 5월은 마지막 평가시험 종료 후 기관별 실무수습 전에 테마특강을 진행하며 조금 쉬어가는 기간이다. 사법연수원에서는 그 기간을 활용하여 실무수습을 할 수 있도록 ‘수료 전 인턴쉽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희망법에 문을 두드렸다.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굳이 희망법에서 수습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공익인권법활동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익인권법활동을 하는 단체로 ‘공감’도 있겠지만,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고민을 시작하여 그 결과물의 하나로서 희망법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의 경험과 지식, 시행착오를 엿볼 수 있다면 공익인권법 활동에 관한 나의 고민을 구체적 형태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처음 한 일 – 마레연 현수막 사건 처음 희망법에서 내가 한 일은,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LGBT, 우리가 여기 살고 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 게시를 불허한 마포구청의 처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페이스북 등지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 접하면서 분개하기도 한지라 이런 사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설레었다. 그러나 연수원에서는 의견서 작성에 관해서는 배우지 않았었고 너무 오랜만에 시험 답안지 외의 글을 작성해 보는 지라 시간 내에 제대로 된 글로 작성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담당 변호사님께서 내가 작성한 것에 일일이 코멘트를 해 주시고, 완성된 의견서를 보내 주셔서 의견서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알 수 있게 된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의견서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지 궁금해져, 민변에서 하는 의견서 작성 실무교육에도 참석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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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변호사 양성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 후기

지난 5월 3일 금요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문화관에서 2013년 첫 번째 ‘공익변호사 양성을 위한 라운드테이블(이하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공익변호활동의 활성화와 공익변호사 양성을 목표로 공익변호활동에 관한 고민을 공유하여왔던 라운드테이블은 2011년부터 시작하여 3년째 꾸준히 그 자리가 이어지고 있다. 희망법의 김동현 변호사의 사회로 시작된 2013년 제1차 라운드테이블에는 6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좌석의 대부분을 채워 공익변호활동에 대한 예비법률가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지난해의 라운드테이블이 공감, 어필, 희망법 등 공익변호사라고 했을 때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비영리전업변호사단체의 활동과 전망이 주가 되었다면,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영리사무소 형태의 공익법률활동 등 기존에 라운드테이블에서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앞의 두 변호사의 발제는 변호사 1인의 영리사무소 형태의 활동이었다.  이미연 변호사의 <동네변호사–카페>는 2층은 카페, 3층은 법률사무소의 독특한 공간구성으로 의뢰인들이 더 편하게 찾아올 수 있게 만든 사무실이다. 이미연 변호사는 법률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에서 지역밀착형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자신의 연고지였던 의정부에 사무실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하며, 현재 성폭력피해자지원 등에서 전문화된 활동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영리 변호사사무실로서 재정은 성폭력피해자 법률조력인 제도, 법률구조, 국선변호 등 정부의 제도를 많은 부분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법률사무소 보다>의 정소연 변호사는 로스쿨 입학 전 전업적 공익변호사를 지망하였으나, 현재 “무료로는 일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이주·난민, 사회복지, 독립예술가와 관련된 법률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의 지망과 달리 정소연 변호사가 영리사무실 형태를 기획하게 된 것은 기존의 비영리 공익변호사단체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후원모델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법률사무소 보다> 역시 소송구조 등의 기존 국가의 제도를 활용하여 재정의 일정 부분을 해결하고 있었고 작가 및 번역가였던 정소연 변호사의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집필·강연활동, 법정통역인 활동으로도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단체의 상근변호사로서 공익법률활동을 하고 있는 변호사들의 발제도 이어졌다. 고지운 변호사는 <이주민지원센터 친구>에서 상근변호사로서의 활동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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