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기자회견에 대한 자의적 수사의 계기, 대법원 2019도16885판결의 문제점

글 / 박 한 희

 

따라서 이 사건 행사는 집시법상 사전 신고 대상이 되는 옥외집회에 해당한다

 

2020년 5월 8일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원)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는 이유로 미신고 집회 주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구호와 피케팅, 퍼포먼스 등을 한 경우에는 기자회견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신고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판결 이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개최한 기자회견에 대해 경찰이 수사를 하는 등, 기자회견을 미신고 집회로 보아 수사를 하는 일들이 본격화됐습니다.

 

▶ 관련 글기자회견 처벌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합니다

 

주목할 것은 이 사건의 항소심인 서울남부지방법원 2018노1489 판결에서는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것입니다.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 무엇이 차이를 만든 것인지 이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016년 겨울, 새누리당사 앞에서 개최된 한 기자회견

2016년 12월 16일 지금은 사라진 옛 새누리당사 앞에서 이정현 대표 사퇴와 약속 이행을 위한 동국대학교 학생 기자회견이 개최되었습니다. 2016년 11월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이정현 의원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면 자신의 손을 장에 지지겠다고 밝힌 것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이정현 의원의 후배인 동국대학교 10여명이 개최한 해당 기자회견은 약 45분간 발언과 ‘이정현 대표는 사퇴하라’ 는 구호, 장지지기 퍼포먼스로 진행되었습니다.

해당 기자회견은 정치인의 잘못된 발언을 비판하고 정치적 책임을 촉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표현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이후 경찰이 해당 기자회견이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라는 이유로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하고 검찰이 기소를 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넘어갔습니다.

 

 

항소심과 상고심의 엇갈린 판단

그렇게 시작된 재판에서 1심은 ‘불특정 다수인이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상태로 연설을 하거나 구호를 제창하는 등 집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면 옥외집회에 해당한다’ 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습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8. 7. 26. 선고 2017고정1908 판결). 구호를 외치거나 플래카드 등을 준비하면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라 본 것입니다.

이에 비해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구호나 퍼포먼스같은 외적인 표지보다는 집시법이 옥외집회에 대해 신고제를 둔 취지에 보다 주목을 했습니다. 즉, 항소심은 어떠한 행위가 집시법상 옥외집회인지 여부는 “사전신고제의 취지를 감안하여 옥외집회의 개최 전 단계에서 참가자와 일반 공중 상호간의 이익충돌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기자회견이 45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졌고 공중과의 충돌도 없었던 점, 피케팅과 퍼포먼스는 기자회견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 등을 자세히 살핀 후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참가자와 일반 공중의 이익충돌 등을 일으킬 정도가 아닌 이상 피켓을 사용하였다거나 구호를 외쳤다는 사정만으로 집시법이 정한 사전신고의 대상이 되는 옥외집회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게 피고인들은 항소심에서 비로소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은 결국 항소심을 뒤엎고 유죄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했습니다. 대법원이 든 논리는 1심과 유사했습니다. 기자회견의 대부분의 시간이 구호와 피케팅, 퍼포먼스로 이루어졌기에 기자회견보다는 집회에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구호의 대상에 일반시민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 이를 사전에 예방할 필요조차 없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전신고가 필요했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의 역할은 더 많은 표현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2016년 12월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린 ‘이정현 대표 사퇴와 약속 이행을 위한 동국대학교 학생 기자회견’ Ⓒ경향신문

 

집시법은 옥외집회에 대해 48시간 전에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고제의 취지는 항소심이 지적한 대로 다수인이 도로 등 공공장소를 사용하면서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과정에서 올 수 있는 공공질서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새누리당사 앞에서 45분간 이루어진 해당 기자회견이 정말 이러한 공공질서의 위험을 가져오고 그렇기에 사전에 신고 의무를 부여해야 하는 자리였을까요? 대법원의 판단대로라면 기자회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피케팅과 퍼포먼스는 기자만이 아닌 대중에게도 영향을 주므로 ‘공공질서 위험을 예방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전부 48시간 전에 신고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요?

“집회·시위의 자유는 언론·출판의 자유와 더불어 대의제 자유민주국가에서는 필수적 구성요소가 된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이다”. 항소심 법원은 헌법재판소 2000헌바67, 83 결정을 참조하여 이와 같이 판시했습니다. 이 말처럼 집회와 시위를 헌법이 보장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최대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신고제를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약하고 이를 확대해석하여 옥외의 모든 표현행위를 옥죄려는 대법원의 태도는 오히려 이러한 헌법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변화를 촉구합니다. 대법원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 판례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나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러한 사회를 보장하는 것, 이것이 이른바 소수자 인권의 보루라 이야기되는 사법부의 역할임을 대법원은 명심하기 바랍니다.